감서[甘誓] 감(甘)은 지명이다. 감서는 하(夏)나라 임금이 유호(有扈)와 싸울 때 이곳에서 군사들에게 맹세한 글을 말한다. <書經 夏書 甘誓>
감서[監書] 규장각 소속 잡직(雜職)의 하나. 임금이 재가(裁可)한 문서와 응제문자(應製文字)를 분담 관리한다. <大典會通 卷1 奎章閣條>
감석[泔淅] 쌀뜨물인데, 쌀뜨물처럼 흰 이빨을 가리킨 것이다.
감석[甘石]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사람인 감공(甘公)과 위(魏) 나라 사람인 석공(石公)을 이르는바, 이 두 사람은 천문학(天文學)에 밝았다.
감석[甘石] 후한서(後漢書) 천문지(天文志)에 “위(魏) 나라 석신부(石申夫)와 제(齊) 나라 감공(甘公)이 천문(天文)을 맡아보는 벼슬을 지냈다.”고 하였다. 그래서 후세에 천문학에 능숙한 자를 감석(甘石)이라 칭한다.
감선[減膳] 나라에 재변이 있을 때 임금이 친히 근신하는 의미로 수라상(水刺床)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감선[減宣] 서한의 혹리로 함선(咸宣)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산서성 홍동현(洪洞縣)인 양(揚) 출신으로 무제 때 하동태수부에서 좌사(佐史)의 직에 있다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다. 회남왕(淮南王)과 주보언(主父偃)의 반란사건을 심문하라는 한무제의 령을 받고 과감하게 사건을 처리했다. 이후 파직과 복직을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하다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의 자리에 근 20년 가까이 재직했다. 후에 우부풍(右扶風)에 임명되어 부임하자 불법을 저지른 성신(成信)이라는 하급관리를 치죄하려고 했으나 성신이 도망쳐 상림원(上林苑)으로 들어갔다. 그가 우붕풍 관하의 현령과 군사를 이끌고 상림원으로 들어가 성신을 잡아서 죽였다. 그 와중에 화살이 상림원의 원문에 꽂혀 대역죄에 연좌되어 하옥되자 자살했다.
감선[減宣] 한(漢)나라 양현(楊縣) 사람이다. 한서(漢書)에는 함선(咸宣)으로 되었다. 벼슬은 하동 수(河東守)·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내고 옥사를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뒤에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하였다. <史記 卷122> <漢書 卷90 酷吏傳>
감선철악[減膳徹樂]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 임금이 근신하는 뜻으로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노래와 춤을 가까이하지 않는 일을 이른다. 감선(減膳). 피전손선(避殿損膳). 철현(徹懸).
감성몽일[感星夢日] 별에 감응하고 해의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는 말로, 위인(偉人)의 탄생을 비유하는 말이다. 노자(老子)의 모친이 큰 별에 감응하여 노자를 임신했다[感大星而有娠]는 말이 연감유함(淵鑑類函) 권318 도교(道敎)2에 나온다. 참고로 수(隋)나라 설도형(薛道衡)의 노씨비(老氏碑)에도 “노군은 별에 감응하여 태어났나니, 기운을 받은 연유를 헤아릴 수가 없다.[老君感星載誕 莫測受氣之由]”라는 말이 나온다. 또 삼국 시대 오(吳)나라 손견(孫堅)의 부인 오씨(吳氏)가 해가 품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夢日入懷] 손권(孫權)을 낳았다는 기록이 진(晉)나라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 권10에 나온다.
감세주[監稅酒] 송대(宋代)의 전매품(專賣品)인 술의 제조·판매를 주관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성진(城鎭)에 두었던 관원(官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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