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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영백기[甘寧百騎]~감용현모[敢用玄牡]~감원하민[敢怨下民]


감영[甘英]  한 나라 때 사람으로, 서해(西海)의 끝까지 가보았던 사람이다, 감영은 반초(班超)의 하리(下吏)였는데, 반초가 그를 파견하여 서해의 끝까지 가게 하자, 감영은 전 시대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까지 모두 가 보았다. <後漢書 卷88 西域傳>

감영백기[甘寧百騎]  감영은 삼국 시대 오(吳) 나라 사람이다. 성품이 사치를 좋아하여 출입할 때, 육로에서는 중기(重騎)가 연달았고 수로에서는 경주(輕舟)가 연달았다 한다. <三國志 吳志 甘寧傳>

감오생지행휴[感吾生之行休]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만물이 제때를 얻음을 부러워하고, 내 인생은 장차 다할 것을 느끼노라.[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감용[感聳]  감격하여 분발하다.

감용현모[敢用玄牡]  탕왕(湯王)이 하(夏)나라를 정벌한 뒤에 고(誥)를 지어 정벌의 정당성을 천명하였는데, 그 내용 가운데 “그러므로 나 소자는 하늘이 명하신 밝은 위엄을 받들어 감히 용서할 수 없기에 검은 황소를 희생으로 사용하여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어 하나라에 죄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肆台小子 將天命明威 不敢赦 敢用玄牡 敢昭告于上天神后 請罪有夏]”라는 말이 있다. 원래 검은 황소를 쓰는 것은 하나라의 예법인데, 당시에 아직 그 예법을 고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감우[紺宇]  감우는 불교(佛敎) 사찰의 별명이다.

감우[紺宇]  불교 사원의 별칭으로, 감원(紺園) 혹은 감전(紺殿)이라고도 한다.

감우편[感遇篇]  당 나라 진자앙(陳子昂)이 지은 시로, 모두 39수이다.

감원[弇園]  감원은 명(明) 나라 때 시문(詩文)으로 이름이 가장 높았던 왕세정(王世貞)을 이른다. 자가 원미(元美), 호는 봉주(鳳洲), 엄주산인(弇州山人)이다. 강소(江蘇) 태창(太倉) 사람으로 이반룡과 함께 후칠자 중 영향력이 가장 컸던 시인이다. 문학의 지론은 이반룡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글은 반드시 서한, 시는 반드시 성당이고, 대력 이후의 책은 읽지 말라.[文必西漢, 詩必盛唐, 大歷以後書勿讀.]”고 주장하였다.

감원[紺園]  사찰(寺刹)을 가리키는 말이다.

감원[監院]  유걸원(流乞院)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감원하민[敢怨下民]  시경 빈풍(豳風) 치이(鴟鴞)에 “하늘이 궂은비를 내리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 껍질을 벗겨다가 우리집 출입문을 얽어두면 저 아래 사는 백성들이 누가 감히 우리를 넘보랴.”라고, 까치의 입장을 빌려 시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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