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옹지주유[江南翁之注油] 진(陳)의 강숙공(康肅公) 효자(堯咨)가 활솜씨가 훌륭하여 당대에 대적할 이가 없었는데, 공 역시 스스로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한번은 집 앞 동산에서 활을 쏘고 있는데, 기름장수 늙은이가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바라보았다. 강숙공이 열에 아홉을 명중시키는 것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저 손에 익었을 뿐이구나.” 하였다. 강숙공이 “네가 감히 나의 활솜씨를 가볍게 보다니!” 하고 화를 내자, 늙은이가 작은 호리병 하나를 땅에 놓고 그 입구에 동전을 올려놓은 다음 동전 구멍으로 천천히 기름을 부었는데, 기름이 다 들어가도록 동전이 젖지 않았다고 한다. <事實類苑>
강남이씨[江南李氏] 당(唐)이 망(亡)하고 송(宋)이 건국(建國)되기까지의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에 이승(李昇)이 건국했던 남당(南唐)을 지칭한다.
강남일지춘[江南一枝春] 남북조 시대 송(宋)나라 육개(陸凱)가 범엽(范曄)과 친했는데, 강남에서 매화 한 가지를 장안(長安)에 있는 범엽에게 보내며 시를 함께 보냈다. 그 시에 “매화를 꺾다가 역사(驛使)를 만나 농두에 사는 친구에게 보내네. 강남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서 그저 그냥 봄 담긴 매화 가지 하나 보내네.[折梅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라 하였다. <事文類聚>
강남장려지[江南瘴癘地]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元年)에 이백(李白)이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사건에 연루되어 야랑(夜郞)으로 추방을 당했다. 야랑은 지금의 귀주성(貴州省) 동재현(桐梓縣) 경계이므로 강남(江南)이라 칭한 것이다. 장려(瘴癘)는 산림의 습기와 열기가 찌는 듯 답답한 더운 기운인데, 사람이 감염되면 병에 걸린다고 한다. 영왕(永王)은 당 숙종(唐肅宗) 때 반역을 도모한 현종(玄宗)의 아들 이린(李璘)을 가리킨다. 이백이 그의 부름을 받고 막료(幕僚)가 되었는데 이린이 역모를 꾀했다가 실패하자 여기에 연좌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곽자의(郭子儀)의 주선으로 야랑(夜郞)으로 귀양 가는 데 그쳤다. <唐書 권202>
강남조[江南調] 악부(樂府) 상화곡(相和曲)으로 강남곡과 같은데, 멀리 헤어져 있는 부부가 서로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경을 노래하는 뜻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남조(南朝) 양(梁)의 유혼(柳惲)의 오언고시, 당(唐) 이익(李益)의 오언절구, 당 저광희(儲光羲)의 오언절구 등이 있다.
강남죽[江南竹] 대나무가 특이하게 좋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江南)에서 나는 대는 관악기(管樂器)를 만들기에 좋기로 유명한데, 양 간문제(梁簡文帝) 쟁부(箏賦)에 “강남의 대는 농옥(弄玉)이 봉(鳳)의 울음소리를 낸 퉁소가 있다.”라고 하였다.
강남칠자[江南七子] 청(淸) 나라 때 강남 출신 학자들로서 왕창(王昶)·왕명성(王鳴盛)·전대흔(錢大昕)·오태래(吳泰來)·조인호(曹仁虎)·조문철(趙文哲)·황문련(黃文蓮) 등 일곱 사람을 가리킨다.
강남탄[江柟歎] 두보의 초당 앞 강가에 서 있던 2백 년 된 굴거리나무가 풍우에 뽑힌 것을 탄식하여 읊은 ‘남수위풍우소발탄(柟樹爲風雨所拔歎)’을 말하는데, 첫 구절이 “倚江柟樹草堂前”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강남탄(江柟歎)이라고 한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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