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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귀흥[江東歸興]~강동발발[江東撥發]~강동흥취[江東興趣]


강동[江東]  양자강(揚子江) 하류로 춘신군(春申君)의 봉지(封地)이다.

강동[江東]  진양(晉陽)이다.

강동군[江東郡]  초회왕이 월나라를 멸하고 설치한 군이다. 관할구역은 지금의 안휘성 동남부, 강소성 남부 및 절강성 북부지역을 포함했다.

강동귀흥[江東歸興]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불현듯 고향의 순채와 농어회 생각이 나서 벼슬을 버리고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字)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강동노어[江東鱸魚]  후한(後漢) 때 강동(江東)의 오군(吳郡) 사람인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강동독보[江東獨步]  진(晉) 나라 왕탄지(王坦之)가 약관(弱冠)에 재명을 날려 강동 지방에 필적할 만한 자가 없자, 당시에 “성덕이 절륜한 치가빈이요, 강동의 독보 왕문도로세.[盛德絶倫郗嘉賓 江東獨步王文度]”라고 일컬었다고 하는데, 문도는 왕탄지의 자(字)이고 가빈은 극초(郗超)의 소자(小字)이다. <晉書 王坦之傳>

강동발발[江東撥發]  강동(江東)은 송대(宋代)의 행정구역(行政區域)이었던 강남동로(江南東路)의 약칭(略稱)이고, 발발(撥發)은 경사(京師)에 공급(供給)할 조운(漕運)을 담당한 발발사(撥發司)의 약칭이다.

강동위북[江東渭北]  친한 친구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함을 뜻한다. 두보(杜甫)가 위북(渭北)에 있을 때 강동(江東)에 있는 이백(李白)을 그리며 지은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시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까.[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강동일모운[江東日暮雲]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조용히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간에 서로 헤어져 있으면서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강동주[江東舟]  부귀영화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경우로서, 초한(楚漢) 시대 항우(項羽)가 한왕(漢王)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단신으로 다시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건너가려다가 탄식하기를 “내가 강동의 8천 자제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건너가 싸우다가 지금 살아 돌아온 자제가 하나도 없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강동의 부형들을 볼 수 있겠는가.”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項羽本紀>

강동편호[降同編戶]  편호(編戶)는 천민의 호적에 편입된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바, 왕후(王侯)가 강등되어 일반 백성과 같아짐을 이른다.

강동흥[江東興]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흥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이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자 강동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관직을 버린 채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강동흥취[江東興趣]  진(晉)나라 때 오중(吳中) 사람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작(名爵)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字)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강등[糠燈]  옛날 촌가에서 소자유(蘇子油)의 찌꺼기를 속강(粟糠)에 혼합하여 여기에 불을 붙여서 등(燈)처럼 사용했던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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