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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록[江祿],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류석존[江流石存], 강류협휴상[僵柳協休祥]


강로[羌虜]  서하(西夏)를 멸칭(蔑稱)한 말이다.

강록[江祿]  강록(江祿)에 대한 기록은 남사(南史)에 수록된 그의 고조부(高祖父) 강이(江夷)의 전(傳)에 부속(附屬)되어 있다. 강록(江祿)은 자(字)가 언하(彦遐)로 어려서 학문에 열심이었고 문장을 잘 썼으며, 지위는 태자세마(太子洗馬)와 상동왕(湘東王)의 녹사참군(錄事參軍)에 올랐으며, 뒤에 당후(唐侯)의 상(相)이 되었다가 죽었다. 금루자(金樓子) 취서(聚書)에 일찍이 강록(江錄)이 있는 곳에 가서 책을 베껴 써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뢰[江瀨]  강여울이다.

강루[降婁]  12성차(星次)의 하나이다. 세성(歲星 木星)은 1년에 한 성차씩 이동(移動)하여, 12년에 천체(天體)를 일주(一周)한다. 12성차는 강루(降婁), 대량(大梁), 침실(沈實), 순수(鶉首), 순화(鶉火), 순미(鶉尾), 수성(壽星), 대화(大火), 석목(析木), 성기(星紀), 현효(玄枵), 추자(娵訾)이다.

강루[降婁]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규성(奎星)과 누성(婁星) 두 별이 위치한 자리를 말한다. 춘분(春分) 무렵 초저녁에 나타난다.

강류곡사구회장[江流曲似九回腸]  강류(江流)는 류강(柳江)을 가리킨다. 구회장(九回腸)은 수심이 마음속에 수도 없이 얽혀 풀리지 않음을 표현한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안서(報任安書)에 “장이 하루에도 수없이 얽혀 집에 있으면 휑하니 무엇인가 잊은 것 같고, 집을 나서면 어디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腸一日而九回 居則忽忽若有所忘 出則不知所如往]”라는 구절이 보인다.

강류본자조종거[江流本自朝宗去]  조종(朝宗)은 제후들이 봄과 여름에 천자를 찾아뵙는 것을 말하는데,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江漢朝宗于海”라는 말이 있다.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물은 흐르지만 돌은 구르지 않음. 두보(杜甫)의 시 팔진도(八陣圖)에 “공업(功業)은 세 나라의 으뜸이었고, 명성은 팔진도(八陣圖)에서 이루어졌네.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건만, 오(吳)나라 삼키려 했던 잘못, 한(恨)으로 남아 있네.[功蓋三分國 名成八陣圖 江流石不轉 遺恨失呑吳]”라고 한 데서 보인다. 유우석(劉禹錫)의 가화록(嘉話錄)에 “기주(夔州)의 서시(西市)는 강가의 모래톱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아래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팔진도(八陣圖)가 있다. 돌을 모아 배치한 것이 완연하게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골짜기에 물이 크게 불어나고 삼촉(三蜀)이 눈이 녹는 때가 되면, 물이 콸콸 흘러내려 열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와 백 길이나 되는 마른 나뭇가지가 물살을 따라 떠내려온다. 물이 빠지고 강이 잔잔해지면 만물이 모두 옛 모습을 잃은 채 드러나는데, 제갈량의 작은 돌무더기는 표시하고 모아놓은 순서가 그대로이다. 이와 같은 것이 근 600년이었고 오늘날까지 움직이지 않는다.[夔州西市 俯臨江沙 下有諸葛亮八陣圖 聚石分布 宛然猶存 峽水大時 三蜀雪消之際 澒涌滉漾 大木十圍 枯槎百丈 隨波而下 及乎水落川平 萬物皆失故態 諸葛小石之堆 標聚行列依然 如是者 近六百年 迨今不動]”라고 하였다. 전하여, 세월이 흐르거나 상황이 바뀌어도 전혀 변화하지 않음. 유행이나 대세에 좀처럼 휩쓸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 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 두보(杜甫)의 시(詩) 팔진도(八陣圖)에 “공업은 세 나라의 으뜸이었고, 명성은 팔진도에서 이루어졌네.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건만, 오나라 삼키려 했던 잘못, 한으로 남아 있네.[功蓋三分國, 名成八陣圖. 江流石不轉, 遺恨失呑吳.]”라고 한 데서 보인다. 세월이 흐르거나 상황이 바뀌어도 전혀 변화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양반은 죽어도 짚불은 쬐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나, 지방 수령은 임기가 차면 고을에서 갈리는데 아전들은 대대로 세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4년 5월 21일 기사에 “관원은 과객이고 이서가 주인이니, 비유하자면 ‘강물은 흐르지만 돌은 구르지 않는다.’라는 것과 같다.[官員爲過客, 吏胥爲主人, 比如江流石不轉故耳.]”라고 하였다. 지방 고을 수령들은 임기가 차면 바뀌지만 아전들은 지속적으로 토색질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고종실록(高宗實錄) 3년 2월 27일 기사에는 “고을에 사는 토호들을 두고 ‘강물이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라고 한다. 한 고을의 삼정과 크고 작은 공사에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어서, 수령은 소신껏 공무를 처리하지 못하며 이민은 분주히 수발하느라 시달린다.[居鄕之土豪, 謂之以江流石不轉. 一邑之三政與大小公事, 無不干預, 主倅難於左右, 吏民疲於奔走.]”라고 하였다.

강류석존[江流石存]  수령은 떠나가도 아전은 영원히 그 고을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강류협휴상[僵柳協休祥]  한(漢) 나라 소제(昭帝) 3년에 상림원(上林苑)의 거대한 버드나무가 땅에 쓰러졌다가 저절로 일어나자, 휴홍(眭弘)이 말하기를 “이는 필부(匹夫)에서 천자가 나올 징조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5년 뒤에 선제(宣帝)가 민간에서 일어나 황제가 되었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漢書 卷75 眭弘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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