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생[講栍] 강시(講試)의 순번을 추첨으로 정하는 일을 가리킨다. 생(栍)이란 길이가 1촌(寸) 반의 둥근 나무에 통(通)·약(略)·조(粗)·불(不)을 한 자씩 쓴 것으로, 강(講)의 성적이 우등인 자에게는 통자생(通字栍), 그 다음은 약자생(略字栍), 그 다음은 조자생(粗字栍), 아주 성적이 좋지 못한 자에게는 불자생(不字栍)을 내어 우열(優劣)을 구별한다.
강생[江生] 남조(南朝) 양(梁) 나라의 강엄(江淹)을 가리킨다.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외가에서 자랐다. 남조의 송(宋)·제(齊)·양(梁) 3대에 걸쳐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문장가로 당대에 이름이 났으나 만년에는 재주가 감퇴하여 좋은 글이 별로 나오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강랑(江郞)의 재주가 바닥이 났다.[江郞才盡]’고 말했다 한다. <梁書 卷十四 江淹傳>
강생창유[强生瘡痏] 억지로 화환(禍患)을 일으킴을 이른다.
강서[江西] 송나라 때의 심학가(心學家)인 육구연(陸九淵)을 말한다. 강서성(江西省) 귀계(貴溪)의 상산(象山)에서 강학하여 당시에 ‘상산 선생’이라 일컬어졌고, 그의 형 육구소(陸九韶)·육구령(陸九齡)과 함께 상산학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마음을 우주 만물의 근본으로 삼아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주장하여 정주(程朱)의 이학(理學)에 반대하였고, 명나라 때 왕수인(王守仁)에 이르러 그 이론이 집대성됨으로써 육왕학파(陸王學派)라고 통칭되었다.
강서[強恕]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서(恕)의 덕목을 힘써 행하는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제 몸에 돌이켜 보아 성하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고, 힘써 제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 행하면 인을 구하는 데 이보다 더 가까운 길이 없다.[反身而誠 樂莫大焉 强恕而行 求仁莫近焉]”라고 하였다.
강서[江西] 중국 선종(禪宗) 남종(南宗)의 제7조(祖) 남악회양(南嶽懷讓)의 제자로, 강서 지방에서 돈오(頓悟)의 선풍(禪風)을 떨친 마조도일(馬祖道一)을 가리킨다.
강서명[姜西溟] 청 자계인(慈谿人)으로 이름은 신영(宸英)인데, 시(詩)·고문(古文)에 공(工)하고 서법에 정하였으며, 주이준(朱彝尊)·엄승손(嚴繩孫)으로 더불어 강남삼포의(江南三布衣)라 일렀다. 나이 70에 진사를 얻어 순천고관(順天考官)이 되었다가 죄를 얻어 옥중에서 죽었다. 저술로는 기원집(淇園集)이 있다.
강서사[江西社] 강서시파(江西詩派)를 말한다. 이 시파는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 황정견(黃庭堅)을 종(宗)으로 삼았는데, 이 시파의 시인에는 진사도(陳師道)·반대림(潘大臨)·조충지(晁冲之) 등이 있다.
강서자[江西子]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육구연(陸九淵)으로 그의 호가 상산(象山)이므로, 육상산(陸象山)이라고도 한다. 그는 우주는 이(理)로 충만한 것이며, 인간에 있어서는 ‘그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명제를 정립하고, 이로써 심(心)을 성(性)과 정(情),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으로 구별한 주희의 학설에 반대하였다. 그의 학설은 왕양명(王陽明)이 실천에 중점을 두는 심학(心學), 즉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로 계승함으로써 육왕학파(陸王學派)로 성립되었다.
강서종파[江西宗派] 송(宋) 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을 종(宗)으로 삼은 시파(詩派)를 이르는데, 여기에는 진사도(陳師道)를 비롯하여 반대림(潘大臨)·사일(謝逸)·한구(韓駒)·조충지(晁沖之)·왕직방(王直方)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강서파[江西派] 남송(南宋) 시대에 시인들은 황산곡(黃山谷)의 시체를 승행하였는데, 황산곡이 강서 사람이므로 그 일파를 강서파라 하였다. 황정견(黃庭堅)은 소동파와 다른 시풍(詩風)을 창작하여 당 나라의 두보(杜甫)를 배울 것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가 강서성(江西省) 사람이므로 그의 시풍을 따르는 자들을 강서파라고 한다.
강서파[江西派] 북송(北宋)의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가 새로운 시풍을 개창하여 많은 시인들이 이를 추종하였는데 여본중(呂本中)이 이들 유파 25인에 대해 계통도를 만들어 강서시사종파도(江西試社宗派圖)라고 한 뒤로 이들을 강서파(江西派), 또는 강서시파(江西詩派)라고 하였다. 당나라의 두보(杜甫)를 종주로 삼아 배울 것을 주장하였다.
강서파[江西派]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 일파를 말한다. 송나라 초기에 번성했던 서곤(西崑)의 시풍(詩風)은 구양수(歐陽脩), 매성유(梅聖兪) 등이 나와서 점차 억눌렀지만, 소식(蘇軾)이 나와 비로소 당시(唐詩)의 격률(格律)을 부흥시켰다. 소식의 후계자가 황정견으로, 황정견은 두보(杜甫)를 주로 배우고 여기에 도잠(陶潛), 한유(韓愈) 등 제가(諸家)의 장점을 취하여 참신한 일파를 세웠다. 신기(神奇)를 좋아한 나머지 기상천외한 기구(奇句)로 치달아서 자연(自然)을 잃고 생경(生硬)에 빠진 점도 있지만, 그 영향은 남송(南宋)의 육유(陸游), 양만리(楊萬里), 범성대(范成大) 등에도 미쳤다. 황정견에게 사사(師事)한 사람으로는 진사도(陳師道)가 유명하다.
강서학자[江西學者] 송나라의 유학자인 육구연(陸九淵) 계통의 학자들을 말한다. 육구연은 강서(江西) 금계(金谿) 사람으로, 자가 자정(子靜)이고 호가 상산(象山)으로, 주희(朱熹)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의 학풍은 전적으로 천리(踐履)에 힘쓰고 강학(講學)을 전부 폐하며 돈오(頓悟)로써 종지(宗旨)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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