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대[降仙臺]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의 장회나루 맞은편에 층층으로 솟은 기암절벽으로, 옛날 신선과 선녀들이 한 계단씩 밟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강선루[降仙樓] 평안도 성천부(成川府)의 객관인 동명관(東明館) 서쪽 비류강(沸流江)의 서쪽 기슭에 있던 누대로,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부사(府使) 오장송(吳長松)이 건립하였고, 1613년(광해군5)에 중건하였다. 편액은 명나라 한림학사 미만종(米萬鍾)의 글씨이다. 모두 2백여 칸이 되는데 누관(樓觀)의 장대함이나 강산(江山)의 수려함은 중국에도 비교할 만한 것이 드물었다 한다.
강설[絳雪] 선가(仙家)에서 먹는다는 단약(丹藥)의 이름이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선가의 상약(上藥)으로 현상(玄霜)과 강설(絳雪)이 있다.”라 하였다. 전하여 붉은 꽃송이나 초목의 붉은 열매를 비유하기도 한다.
강설뢰진[講說雷震] 부처의 설법(說法)이 마치 천둥처럼 위엄이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 “거침없이 불법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사자후와 같았고, 그 강설하는 것은 천둥소리와 같았다.[演法無畏 猶如獅子吼 其所講說 乃如雷震]”라고 하였다.
강설반[絳雪盤] 강설(絳雪)을 담은 소반이다. 강설은 선가(仙家)에서 말하는 단약(丹藥)의 이름이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선가(仙家)의 상약(上藥)으로는 현상(玄霜)과 강설이 있다.”라 하였다.
강설진망[强舌塵網] 혀가 굳어지도록 글을 읽지 않음으로써 책에 먼지가 끼고 거미줄을 치게 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강설현상[絳雪玄霜] 모두 선약(仙藥)의 이름이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선가(仙家)의 상약(上藥)에 현상·강설이 있다.”라 하였다.
강성[薑性] 강성은 강계지성(薑桂之性)의 준말로, 흔히 사람의 성품이 생강과 육계의 매운 맛처럼 강직한 경우를 비유한 말로 쓰인다.
강성[康成] 강성은 한(漢)나라 정현(鄭玄)의 자이다. 마융(馬融)을 사사하고 유학한 지 10여 년에 동래(東萊)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는데 당고(黨錮)의 화가 일어나서 14년 동안 피금(被禁)되자 은거하며 경업(經業)을 닦아 많은 경서에 주를 달았다. <後漢書 卷35 鄭玄列傳>
강성[康成] 강성은 후한(後漢) 때의 경학자(經學者)로 예기(禮記) 등의 주석을 낸 정현(鄭玄)의 자이다. 정현은 일찍이 농사를 짓고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여 문도(門徒)가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국상(國相) 공융(孔融)이 정현을 매우 존경하여 그가 사는 향리를 특별히 정공향(鄭公鄕)이라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後漢書 鄭玄傳>
강성[康成] 강성은 후한(後漢) 정현(鄭玄)의 자이다. 후한의 마융(馬融)이 생도들을 가르칠 때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강유(絳帷), 즉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웠다 하며, 정현은 10년 남짓 마융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강성[康成] 정현(鄭玄, 127~200)이다. 후한의 대학자로 북해(北海) 고밀인(高密人)이다. 마융(馬融)에게 수학하고 산동(山東)으로 돌아가자, 마융이 ‘도(道)가 동으로 갔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모시(毛詩), 삼례(三禮), 주역(周易), 상서(尙書) 등에 주석을 낸 양이 100만 어(語)나 될 정도로 저술에 힘썼고, 제자도 1000여 명이나 되었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의 학술을 통합한 ‘한학의 집대성’이라 불린다.
강성[康成] 한나라 정현(鄭玄)의 자가 강성이다. 후한의 정현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는 꿈에 공자가 나타나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진년(辰年)이고 내년은 사년(巳年)이다.”라고 했다. 이에 정현이 참술(讖術)로 맞추어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줄 알았는데, 과연 그해 6월에 병으로 죽었다 한다. <後漢書 卷65 鄭玄列傳>
강성고취실고[降省估就實估] 도성(都省)에서 정한 물건의 공시가격(公示價格)을 성고(省估)라 하는데 이것은 값이 싸고, 실고(實估)는 민간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가격을 이른다.
강성군[剛成君] 채택(蔡澤)이 소왕(昭王)으로부터 받은 봉호(封號). 사기(史記)에는 강성군(綱成君)으로 되어 있다.
강성랍거[江城蠟炬(燭)] 강성(江城)은 성도(成都)를 가리킨다. 납거(蠟炬)는 밀랍으로 만든 초를 말한다.
강성청락매[江城聽落梅] 봄철이 다 지나 초여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 권20 여사랑중음청황학루상취적(與史郞中飮聽黃鶴樓上吹笛)의 “황학루 누대 속에 옥피리를 부는데, 가람성 오월달에 매화꽃이 떨어지네[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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