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강쇄[韁鎖]~강수상생[薑樹上生]~강순[强循]


강쇄[韁鎖]  명강이쇄(名韁利鎖)의 준말로 명리(名利)의 굴레를 쓰고 이록(利祿)의 쇠사슬에 묶인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강수[講蒐]  군사 훈련을 위한 사냥을 말한다.

강수[强首]  신라(新羅) 때의 유학자이며 문장가로서, 특히 태종 무열왕 때에는 당(唐) 나라와 신라 사이에 왕래하던 국서(國書)를 도맡아 크게 공헌하였고, 신문왕 때에는 처음으로 국학(國學)을 세워 여러 박사(博士)를 두었는데, 이 때 강수가 설총(薛聰)과 함께 경서(經書)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쳤었다.

강수동류원야성[江水東流猿夜聲]  중국의 모든 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듯이 만사가 덧없이 흘러감을 뜻한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양왕이 즐기던 운우의 정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원숭이만 밤중에 우는 것을[襄王雲雨今安在 ]”이라 하였다.

강수상생[薑樹上生]  ‘생강이 나무 위에서 난다[薑樹上生]’는 말은 소강절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 정이천(程伊川)이 병문안을 갔다. 이천이 “요부(堯夫)께서 평생 공부한 것이 오늘 아무 소용이 없단 말입니까?”라고 하자 소옹이 소리를 크게 하여 답하기를 “네가 생강이 나무 꼭대기에서 난다고 한다면 나는 역시 그저 너의 말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옹이 집요하게 믿지 않는 이천을 꼬집은 말이다. <二程遺集 卷18> 강절(康節)은 소옹(邵雍)이다.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이다.

강수은[姜睡隱]  강항(姜沆)으로, 자는 태초(太初)이며 호는 수은이다. 정유재란 때에 남원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으며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였고 포로로 일본에 있으면서 그곳에 성리학을 전하였다. 저서에는 간양록(看羊錄), 수은집(睡隱集)이 있다.

강숙[康叔]  강숙(康叔)의 이름은 봉(封), 주(周) 무왕(武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성왕(成王) 때 무경(武庚)의 난이 일어나자, 주공(周公)과 함께 난을 평정하였다. 성왕이 은(殷)나라의 유민(遺民)을 강숙에게 내려주고 위군(衛君)이라고 하였다. 성왕이 장성했을 때 강숙을 등용하여 주(周)나라 사구(司寇)로 삼고, 위(衛)나라에 보배로운 제기(祭器)를 하사하여 강숙에게 덕(德)이 있음을 드러내주었다.

강순[强循]  당(唐)나라 봉주(鳳州) 사람으로 자는 계선(季先)이다. 벼슬은 대리소경(大理少卿)에 이르렀다. 특히 화원거(華原渠)를 소통시켜 백성들의 갈사(渴死)를 면하게 하고 전답에 대어 농리를 증가시켰다. <唐書 卷100> <舊唐書 卷185下>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