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降神] 제사를 지낼 적에 하는 의식으로, 신령이 내려오도록 비는 의식이다.
강신[講信] 조직체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의와 신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일을 말한다.
강신[講信] 향약(鄕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며 약법(約法)이나 계(契)를 맺는 것이다.
강신수[江愼修] 청(淸) 무원인(婺源人)으로 이름은 영(永) 자는 신수이며, 강희(康熙) 시에 제생(諸生)으로 금고(今古)를 박통(博通)하고 더욱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정심(精深)하여 장년으로부터 늘그막에 이르도록 단황(丹黃)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보산(步算)·종률(鍾律) 성운(聲韻)에 정밀하여 십여 종의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에 드러난 것은 주례의의거요(周禮疑義擧要)·향당도고(鄕黨圖考)·고운표준(古韻標準)등이다. 일찍이 대진(戴震)이 그를 종학(從學)하여 힘을 얻은 것이 많았는데 세상에서 강·대(江戴)라고 칭한다.
강신수[江愼修] 청나라 학자 강영(江永). 혜동(惠棟) 중심의 오파(吳派)와 함께 고증학의 양대 계통을 이루었던 환파(皖派)의 핵심 인물로 박학풍을 견지하였다. 특히 천문역학 방면에 뛰어나 수학(數學) 8권과 추보법해 5권를 남겼다
강신양소[江神楊素] 수(隋)나라 양소(楊素)가 진(陳)을 공격하기 위해 함대를 몰고 장강(長江)을 내려갈 적에 진인(陳人)들이 그의 위의가 웅위(雄偉)한 것을 바라보고는 “청하공은 바로 강물의 귀신이다.[淸河公卽江神也]”라고 경외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隋書 卷48 楊素列傳>
강신차범풍[江神借帆風] 왕발(王勃)이 일찍이 교지령(交趾令)으로 있던 자기 아버지를 뵈러 가던 도중 마당수(馬當水)에 당도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내일 등왕각(滕王閣)에서 기문(記文)을 지을 터인데, 그대가 가서 기문을 지으면 후세에 명성을 전하리라.”라고 하므로, 왕발이 말하기를 “여기서 홍주(洪州)가 6, 7백 리의 거리이고, 오늘 해도 석양인데 어떻게 당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자, 노인이 이르기를 “내가 그대에게 한 돛의 청풍(淸風)을 도와주겠다.”라고 하여, 마침내 왕발이 배에 올라 돛을 펴니, 배가 바람을 타고 달려 그 다음날 새벽도 되기 전에 홍주에 당도하여 등왕각에 가서 기문을 지은 결과, 과연 명성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강신차풍[江神借風] 왕발(王勃)의 배가 마당(馬當)에 정박하고 있을 때, 중원의 강물을 맡고 있다는 노인이 나타나서 “내일 홍주(洪州)의 등왕각에서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라.”고 하고는, 바람을 불어 주어 700리나 떨어진 홍주까지 하룻밤 사이에 닿게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類說 卷34 摭遺 滕王閣記>
강실[絳室] 황정경(黃庭經)에 “마음은 강궁(絳宮)이 되고 폐(肺)는 옥당궁(玉堂宮)이 된다.”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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