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絳帳] 강사장(絳紗帳). 빨간 휘장을 이른다. 후한 때 경학자(經學者)인 마융(馬融)은 고재박식(高才博識)한 대유(大儒)로서 문하에 항상 천여 명의 제생(諸生)을 교양(敎養)하였는데, 그는 자기 거실을 퍽 사치스럽게 꾸몄던바,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서 붉은 휘장을 쳐 놓고 그 앞쪽으로는 생도를 가르치고, 뒤쪽에서는 여악(女樂)을 베풀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후세에는 사문(師門) 또는 강석(講席)의 경칭(敬稱)으로 쓰인다. <後漢書 卷60上 馬融列傳>
강장[絳帳] 붉은 휘장. 후한(後漢)의 마융(馬融)이 호사스러움을 좋아하여 언제나 높은 당상에 앉아 진홍색 비단으로 된 휘장을 쳐두고 앞에서는 제생들을 교수하고 뒤에는 여악(女樂)을 배열해 놓았는데, 그 진홍색 휘장[絳帳]을 후세에 강좌(講座)를 미칭하는 뜻으로 전용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융의 거처(居處) 기복(器服)이 치식(侈飾)이 많아서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강사장(絳紗帳)을 치고서 앞으로는 생도들을 가르치고 뒤로는 여악(女樂)을 벌였다.”라 하였다. <後漢書 馬融傳> 그래서 후세에 강좌(講座)를 지칭하여 강장이라 한다. 스승의 자리. 서재(書齋).
강장[康莊] 강구(康衢)와 같은 뜻으로, 번화한 거리를 가리킨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오달(五達)의 길을 강(康)이라 하고, 육달(六達)의 길을 장(莊)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강장[康莊] 번화한 거리. 사통 팔달의 큰길. 강장(康莊)은 툭 트인 큰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다섯 곳으로 통한 길은 강(康)이라 하고, 여섯 곳으로 통한 길은 장(莊)이라 한다.[五達爲之康 六康爲之莊]” 하였다.
강장구[康莊衢] 사방팔방으로 두루 통하는 도회지의 큰 길거리를 말한다. 사기(史記) 권74 맹자열전(孟子列傳)에 “제왕(齊王)이 추석(騶奭)을 위하여 도회지 큰길가에 집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다섯 곳으로 통하는 길을 강이라 하고 여섯 곳으로 통하는 길을 장이라 한다.[五達謂之康 六達謂之莊]”고 하였다.
강장선생[絳帳先生] 후한(後漢) 마융(馬融)이 사치한 생활을 하여 언제나 높은 마루에 앉아 자줏빛 비단 장막을 드리워 놓고 앞에서는 생도(生徒)들에게 수업(授業)하고 뒤에서는 여악(女樂)을 벌였기에 이렇게 불렀다.
강장유가훈[絳帳留家訓] 자식들을 엄하게 훈도한 것을 뜻한다. 옛날 후한(後漢)의 대유(大儒) 마융(馬融)이 고당(高堂)에 앉아 붉은 장막을 드리우고 생도를 가르쳤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後漢書 馬融傳>
강장지년[强壯之年] 원기가 왕성한 나이. 강(强)은 40대, 장(壯)은 30대를 뜻한다.
강장하무약병[强將下無弱兵]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 없다. 유능한 인재 밑에는 유능한 인재가 모인다는 말이다.
강장혹참암[康莊或巉巖] 강장 즉 사통팔달의 대로(大路) 위에서도 거침없이 참소와 무함의 유언비어가 횡행하여,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마치 험한 산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극악무도한 대죄인이 옳고 그름을 알 수 없게 흐려 놓고는 도당을 모아 대로상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네.[元惡迷是似 聚謀洩康莊]”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3 入衡州>
강장휘음[絳帳徽音] 박학한 학식으로 잘 가르쳤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위영(韋逞)의 모친 송씨(宋氏)가 아무도 모르는 주관(周官)의 의례(儀禮)에 밝았기 때문에, 나라에서 그의 집에 학당을 세우고 붉은 비단 장막[絳帳] 너머로 가르치게 했던 고사가 열녀전(列女傳)에 실려 있다.
강재[康哉] 서경(書經) 익직모(益稷謨)에 “대신이 착하니 모든 일이 편안하다.[股肱良哉 庶事康哉]”란 노래가 있다. 즉, 모든 일이 평강(平康)하게 된다는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