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저[羌氐] 강저(羌氐)는 강족(羌族)과 저족(氐族)을 아울러 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동진(東晉) 때에 전진(前秦)과 후량(後涼)을 세웠는데, 이때에 모두 멸망되었다.
강적[羌笛] 고대의 관악기인데, 길이는 두 자 네 치이고 구멍은 세 개나 네 개이다. 사천성(四川省)의 강족(羌族)에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강적이라고 한다.
강적[羌篴] 곡명. 즉 호가곡(胡笳曲)이다.
강적[羌笛] 변방의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일종의 관악기다. 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한 무제 때 구중이 적(笛)을 만들었고, 또 그 후에 강적(羌笛)이란 것이 있게 되었다.[漢武帝時 丘仲作笛 其後又有羌笛]”라 하였다. 강적(羌笛)은 구멍이 세 개, 네 개, 다섯 개짜리가 있다.
강적[羌笛] 원래 오랑캐의 피리라는 말로, 그 곡조에 낙매화곡(落梅花曲)이 있다. 이백(李白)의 청계반야문적(靑溪半夜聞笛)에 “오랑캐 젓대로 매화인을 연주한다.[羌笛梅花引.]”라는 구절이 있다. <樂書 羌笛> <李太白文集 卷20>
강적[羌笛] 일종의 호가(胡笳). 이백(李白)의 취적시(吹笛詩)의 “황학루에서 옥피리 부니 오월 강성(江城)에 매화가 떨어지네[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라고 한 시가 낙매화곡(落梅花曲)으로 악부(樂府)에 들어있다.
강전[康田] 강공전공(康功田功)의 준말로, 서경(書經) 무일(無逸)의 “문왕이 허름한 옷을 입고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길러 주는 일을 행하였다.[文王 卑服 卽康功田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강전[康田] 백성을 편히 살게 해 주는 일과 농사일을 말한다. 서경(書經) 무일(無逸)에 “문왕이 검소한 차림으로 백성을 편히 살게 해 주는 일과 농사일에 나아가셨습니다.[文王卑服 卽康功田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강전[講殿] 경연(經筵)을 열어 강학(講學)하는 전각(殿閣)이다.
강전[絳殿] 붉은 궁전으로, 왕비의 처소를 가리킨다.
강전[糠前] 강비재전(糠粃在前). 실력도 없으면서 남보다 먼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진서(晉書) 권56 손작열전(孫綽列傳)에 “손작은 성품이 활달하고 농담을 좋아했는데, 습착치(習鑿齒)와 함께 길을 갈 때에 손작이 앞서 가면서 습착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쌀을 일면 돌들이 뒤에 남지.[沙之汰之 瓦石在後]’라 하니, 습착치가 그 말을 받아서 말하기를 ‘곡식을 까불면 쭉정이가 앞에 날지.[簸之颺之 糠粃在前]’라 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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