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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지추[强鐵之秋]~강초제[江草齊]~강총미환가[江摠未還家]


강철[强鐵]  독룡.

강철지추[强鐵之秋]  강철(强鐵)은 상상의 동물로 지나간 곳마다 결실이 다된 초목이나 곡초가 말라 죽는다는 뜻으로 운수가 기박한 사람은 팔자가 사나워 가는 곳마다 불행한 사고가 연발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강초[絳椒]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초나라 대부 자초(子椒)의 병칭이다. 주발은 가의(賈誼)를 쫓아냈고, 자초는 굴원을 쫓아냈다.

강초제[江草齊]  풀빛이 하나로 같은 색이라는 말이다.

강촌[羌村]  강촌은 중국 부주(鄜州)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 일어난 안녹산(安綠山)의 난리로 두보의 가족이 이곳에 피난해 있었는데, 뒤에 두보가 이곳을 찾아가 서로 상봉하고 그 감회를 ‘강촌(羌村)’이란 제목으로 세 수의 시에 서술하였다.

강촌사사유[江村事事幽]  두보(杜甫)의 시에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보듬고 흐르는 곳, 해 긴 여름날 강촌에는 일마다 유한해라. 혼자 왔다 갔다 하는 들보 위의 제비요, 서로 친근하게 노니는 물속의 갈매기라.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아이는 바늘을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네. 친구가 녹미를 대 주니 그러면 됐지, 미천한 몸이 이 밖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오.[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梁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畫紙爲棊局 稚子敲針作釣鉤 但有故人供祿米 微軀此外更何求]”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9 江村>

강총[江摠]  양(梁)나라 문인(文人)이다. 자는 총지(摠持)이다. 오칠언시(五七言詩)에 뛰어나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양무제(梁武帝) 태청(太淸) 3년에 나이 31세로 후경(侯景)의 난리를 피해 유랑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진문제(陳文帝) 천가(天嘉) 4년 나이 45세가 되어서야 조정에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머리가 검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두보(杜甫)의 만행구호(晩行口號) 시에 “멀리 양나라 강총에게 부끄러워라,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 아직 안 세었었지.[遠媿梁江摠 還家尙黑頭]”라고 하였다.

강총[江摠]  강총은 남조 시대 양(梁) 나라의 문인으로 일곱 살에 고아가 되어 외가에서 자랐는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그의 외숙(外叔)인 오 나라 평광후(平光侯) 소려(蕭勵)가 특별히 그를 사랑하며 이르기를 “너의 정신과 풍채가 영특하니 뒤에 마땅히 나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강총[江摠]  강총은 남조(南朝) 진(陳) 때의 시인(詩人)으로 벼슬은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 그는 32세 때에 난리를 피해 그로부터 14, 5년 동안을 외국에 떠돌아다니다가 45세가 되어서야 조정(朝廷)에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머리가 아직 검었었다고 한다.

강총[江總]  강총은 진(陳) 나라 사람인데, 그의 6대조 강이(江夷)는 남조 송(南朝宋) 때 재상이었고, 강총 또한 시문(詩文)으로 당세에 이름이 높았고 벼슬도 재상에 이르렀었다. <南史 卷三十六>

강총[江摠]  남조(南朝)의 문인 강엄(江淹)이다.

강총[江摠]  남조(南朝) 양(梁)의 강총이 7세에 고아가 되어 외가에서 양육되었는데, 외숙인 오평후(吳平侯) 소려(蕭勵)가 자기보다 훨씬 저명한 인물이 될 것이라면서 그를 격려하며 보살폈던 고사가 전한다. <陳書 卷27 江摠列傳> ‘江摠’은 ‘江總’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입형주(入衡州) 시에 “강총처럼 외가에서 길러지고, 사안처럼 항상 흥에 겨웠다오.[江總外家養 謝安乘興長]”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3>

강총[江總]  자는 총지(總持)로, 제양(濟陽) 고성(考城) 사람이다. 어려서 명민하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양 무제(梁武帝)에게 시문(詩文)을 인정받아 벼슬이 태상경(太常卿)에 이르렀다. 후경(侯景)의 난 이후에 회계(會稽)로 피난갔다가 천가(天嘉) 4년 진 문제(陳文帝)의 부름을 받고 중서시랑(中書侍郞)이 되었다. 진 후주(陳後主) 때에는 벼슬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 진(陳)나라가 망하자 수(隋)나라로 들어가 개부(開府)에 올랐다.

강총미환가[江摠未還家]  양(梁) 나라 문인(文人) 강총(江摠)이 난리를 만나서 고향을 떠나, 그의 외숙이 있는 영남(嶺南)으로 가서 의탁하였는데,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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