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姜太公] 낚시질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고대 중국 주나라 태공망(太公望)에게서 비롯되었다.
강태공[姜太公] 주(周)나라 초기 때 사람으로 본명은 강자아(姜子牙)이며,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太公望), 태공(太公) 또는 강상(姜尙), 사상보(師尙父)등 다양하게 불린다. 팔십 평생을 낚시질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고 하는데, 고기 잡는 일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낚싯바늘은 곧게 펴서 물에 드리웠다고 한다. 위수(渭水)에 낚시를 드리우고 때를 기다린 지 10여 년 만에 주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초빙된 다음, 문왕의 스승이 되었다. 문왕은 그가 조부인 태공(太公)이 항시 바라던 사람이라는 뜻에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했다. 병법 이론에 밝아서 문왕이 죽은 뒤에 무왕(武王)을 도와 목야(牧野) 전투에서 은(殷)나라 주(紂)왕의 군대를 물리치고 주(周)나라를 세우는데 큰공을 세웠다. 나중에 제(齊) 땅을 영지로 받아 제(齊)나라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강통[江統] 강통은 진(晉)나라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응원(應元)이다. 원강(元康) 9년에 사융론(徙戎論)을 지어 융(戎)을 옮겨 살게 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통[江統] 중국 진(晉)나라 때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응원(應元), 벼슬은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융론(徙戎論)을 지어 혜제(惠帝)에게 올렸는데, 융인(戎人)과 적인(狄人)을 색출해서 몰아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晉書 卷56 江統列傳>
강퇴비부[彊退非夫]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에 “일개 부대를 편성하여 나왔다가 적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물러선다면 대장부가 아니다.[成師以出 聞敵彊而退 非夫也]”라는 말이 나온다.
강파[糠簸] 손작이 어느 날 습착치(習鑿齒)와 함께 길을 가다가 뒤에 오는 착치가 ‘앞에 있는 쭉정이[糠]를 키질[簸]해 버리겠다.’라 했다. <晉書 卷五十六 孫綽傳>
강패[江牌] 도박 기구의 한 가지의 투전(鬪牋)을 가리킨다.
강퍅자용[剛愎自用]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愎(괴팍할 퍅).
강편수[姜編修] 중국 한림원(翰林院)의 편수 강왈광(姜曰廣)을 말한다. 인조 4년에 황자 탄생의 조서를 반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
강평[剛平] 위(衛)나라 땅. 지금의 하남성 청풍현(淸豊縣)에 있었는데, 조 경후(趙 敬侯) 4년에 이곳에 성을 쌓아 읍(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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