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포[絳袍] 강사포(絳紗袍)를 말하는 것으로, 임금이 조하(朝賀) 때에 입던 붉은 빛깔의 예복을 지칭한다.
강포[江鮑] 강엄과 포조이다. 강엄은 남조(南朝) 시대 양(梁) 나라의 시인(詩人)이고, 포조도 역시 남조 시대 송(宋) 나라의 시인이다.
강표[江表] 강표는 강남(江南)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진기(晉紀) 26에, 진왕(秦王) 부견(符堅)이 군신들을 태극전(太極殿)에 모아놓고 진(晉)을 칠 것을 의논하니,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 권익(權翼)이 “지금 진나라가 비록 미약하나 큰 잘못이 없고, 사안과 환충은 다 강남의 위인이다.[今晉雖微弱 未有大惡 謝安桓沖 皆江表偉人]”라고 말했다.
강표암[姜豹庵] 이름은 세황(世晃),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이요, 진주인(晉州人)으로 일찍이 부사(副使)가 되어 연경(燕京)에 갔었는데 청조(淸朝) 사람들이 세황의 서화(書畫)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청하는 자가 구름처럼 모였다. 세황은 소기(小技)를 자랑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마지못해 몇 사람에게만 응하고 말았다. 일강관(日講官) 석암(石菴) 유용(劉鏞)·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이 글씨로 천하에 유명하였는데 세황의 글씨를 보고 천골개장(天骨開張)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강풍어화[江楓漁火] 장계(張繼)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에 나오는 구절로 전문은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 내리고, 강가의 단풍과 고깃배 등불 바라보다 시름 속에 잠을 청한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 나그네의 배에까지 들려온다.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이다. ‘강풍(江楓)’은 강가의 단풍나무를 말하는데 ‘강촌(江村)’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강풍(江楓)’이란 말은 원래 굴원의 초사(楚辭)에 보이는 “맑고 맑은 강물, 강가엔 단풍나무 있네.[湛湛江水兮上有楓]”에서 왔다고 보기도 한다. ‘어화(漁火)’는 고기를 잡으려고 어선(漁船)에 켠 불빛을 말한다.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당(唐)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에 이르기를 “달은 지고 까마귀 울 때 하늘 가득 서리인데, 강 단풍과 어화 서로 마주 대해 조는구나.[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라고 하였다.
강피[姜被] 강굉(姜肱)의 이불. 형제간의 우애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강굉(姜肱)이 나이 젊은 계모(繼母)를 섬기면서, 내실(內室)에는 들어가지 않고 아우인 중해(仲海)·계강(季江)과 화목하게 한 이불을 덮고 잤다고 한다. <後漢書 卷53 姜肱傳>
강피[姜被] 강굉(姜肱)의 이불이라는 뜻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가리킨다. 강굉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가 백회(伯淮)인데, 두 아우인 중해(仲海)·계강(季江)과 우애가 돈독하여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잤으므로 강굉공피(姜肱共被)라는 고사를 남겼다. <後漢書 卷53 姜肱列傳>
강피난[姜被暖] 강씨(姜氏)는 후한(後漢) 때의 명사 강굉(姜肱)은 그의 아우 중해(仲海)·계강(季江)과 우애가 지극하여 한 이불을 같이 덮었다 한다.
강필[杠筆] 깃대 같은 붓이란 곧 웅건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 시에서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한 끝에 “장부의 장절치고 그대만 한 이 드물거니, 아, 내가 그걸 말하려면 깃대 같은 큰 붓을 어떻게 얻을까.[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고 하였다.
강필[江筆] 훌륭한 시문을 비유한 말이다. 강필은 양(梁) 나라 때의 문장가인 강엄(江淹)의 붓이란 뜻으로, 그가 일찍이 곽박(郭璞)에게서 오색필(五色筆)을 받아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가 뒤에 꿈에 그 붓을 다시 돌려주고는 문재(文才)가 상실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梁書 卷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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