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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만고류[江河萬古流~강하지이[江河之異]~[江夏黃童]


강하[江夏]  장강과 하수를 말한다.

강하[江夏]  ‘강하(江夏)의 황동(黃童)’으로 일컬어지던 황향(黃香)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의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으로 자가 문강(文強)이다. 황향이 어릴 때 집이 가난하여 부지런히 일해 부모를 봉양하고 경전(經傳)을 배워 문장에 능하니, 사람들이 “천하무쌍이라, 강하 황동이여.[天下無雙 江夏黃童]”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110上 文苑列傳 黃香>

강하[江夏]  중국의 지명이다. 후한(後漢) 때 강하인(江夏人) 황향(黃香)이 9세에 어머니를 잃고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를 섬겨, 겨울에는 몸으로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침석(枕席)에 부채질을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강하만고류[江河萬古流]  문장이 매우 뛰어남을 표현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희위육절(戲爲六節) 시의 둘째 수에, 초당사걸(初唐四傑)로 유명한 양형(楊炯), 왕발(王勃),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의 시문을 당시의 경박한 문사(文士)들이 비웃는 것을 두고 “양왕노락의 당시 문체를, 경박하게 글짓는 이들 비웃어 마지않누나. 너희는 몸과 이름이 함께 사라지겠지만, 없어지지 않는 강하는 만고에 흐르리라.[楊王盧駱當時體 輕薄爲文哂未休 爾曹身與名俱滅 不廢江河萬古流]”라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1>

강하불능실루치[江河不能實漏巵]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 “지금 낙숫물 방울도 충분히 항아리를 채워 넘치게 할 수 있지만, 강하의 큰물도 새는 술잔은 채울 수 없나니,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今夫霤水足以溢壺榼 而江河不能實漏巵 故人心猶是也]”라는 말이 있다.

강하왕도종[江夏王道宗]  당(唐)나라 종실(宗室) 출신의 무장(武將)으로, 태종(太宗)에게 이세적(李世勣)과 견줄 수 있는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태종(太宗) 때에 이정(李靖)을 따라 출정하여 돌궐(突厥)을 격파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정관(貞觀) 11년에 강하군왕(江夏郡王)에 봉해졌으나, 뇌물수수의 죄명(罪名)으로 하옥되어 직무와 봉읍을 삭탈당하였다가 다시 등용되어 요동도행군부총관(遼東道行軍副總管)으로 태종(太宗)을 따라 고구려 침공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뒤에 삭주(朔州) 지역의 진수(鎭守)를 맡아 아사나사이(阿史那社爾)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설연타(薛延陀)를 섬멸하여 북방을 평정하였으나, 고종(高宗) 영휘(永徽) 4년에 장손무기(長孫無忌)의 모함으로 상주(象州)에 유배 도중에 병사하였다. <舊唐書 宗室列傳>

강하지이[江河之異]  진(晉)나라 신정(新亭)에서 명사(名士)들이 모여 난세(亂世)를 개탄하는 우국지정(憂國之情)의 말을 하자 주의(周顗)가 탄식하며 “풍경은 똑같은데 눈을 들어 보니 강산은 모두가 바뀌었구나.[風景不殊 擧目有江河之異]”라고 하니, 참석한 이들 모두가 서로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晉書 卷69 周顗列傳>

강하황동[江夏黃童]  강하는 후한 시대 강하의 안륙(安陸) 사람 황향(黃香)을 가리킨다. 황향은 자가 문강(文彊)으로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여름에는 베개와 잠자리에 부채질하여 서늘하게 하고 겨울에는 몸으로 이불을 따뜻하게 하여 어릴 적부터 효성으로 이름났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어 글에 능하였고, 특히 천문(天文)·역법(曆法)·음악 등을 좋아하여 박문강기(博聞强記)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천하무쌍 강하황동(天下無雙江夏黃童)’이라고 칭찬하였다. <後漢書 卷80 文苑列傳 黃香>

강하황동[江夏黃童]  강하의 동자(童子)는 후한(後漢) 때 강하 사람인 황향(黃香)을 이른다. 그가 어렸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노복이 없으므로 부지런히 일하여 어버이를 봉양하고 경전(經傳)을 배워 문장에 능하자,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여 ‘천하무쌍인 강하의 황동이다.[天下無雙江夏黃童]’라고 하였다.

강하황동[江夏黃童]  총명하고 박학하여 재주가 넘치는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사람인 황향(黃香)은 자가 문강(文强)인데, 어려서 모든 서책을 두루 보아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특히 천문(天文), 역법(曆法), 음악(音樂) 등을 좋아하여 박문강기(博聞强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천하무쌍 강하황동(天下無雙江夏黃童)’이라고 칭하였다. 뒤에 장제(章帝)가 황향에게 동관(東觀)에 있으면서 미처 보지 못한 서책을 보게 하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면서 칭송하였다. <東觀漢記 黃香>

강하황동[江夏黃童]  황향(黃香)을 지칭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권80 문원열전(文苑列傳) 황향(黃香)에 “황향은 강하 사람이다. 나이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리워하다가 야위어 상중(喪中)에 죽을 뻔하였으므로 향리의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나이 20이 되었을 때 그 고을의 태수(太守) 유호(劉護)가 소문을 듣고 불러다 문하효자(門下孝子)로 삼고 매우 사랑하였다. 황향이 가난하여 노복이 없었으므로 몸소 일을 하여 마음을 다해 부친을 봉양하면서 경전(經典)을 널리 보고 도술(道術)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문장에 능하니, 도성에서 그를 ‘천하에 둘도 없는 강하황동(江夏黃童)’이라고 호칭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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