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江漢] 강한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이다. 시경(詩經) 한광(漢廣)에 이르기를 “한수가 넓어서 헤엄쳐 갈 수가 없으며, 강수가 길어 뗏목으로 갈 수가 없도다.[漢之廣矣 不可泳思 江之永矣 不可方思]”라고 하였다.
강한[江漢] 시경(詩經) 강한(江漢)은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현신(賢臣)인 소호(召虎)가 회이(淮夷)를 평정한 것을 찬미한 시인데, 그 시를 윤길보(尹吉甫)가 지었다. 모시 서에 “강한(江漢)은 윤길보가 선왕을 찬미한 시이니, 쇠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난(亂)을 다스려 소공(召公)을 명하여 회이를 평정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윤길보는 선왕의 중흥 시기에 군대를 거느리고 험윤(玁狁)을 정벌하기도 하였다.
강한[江漢]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주 선왕(周宣王)이 소공(召公)을 명하여 회이(淮夷)의 난을 평정한 큰 업적을 찬미한 시로 “호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어, 왕의 아름다운 명을 답하여 칭송해서, 소공의 종묘의 그릇을 이루니, 천자께서 만수무강을 누리소서.[虎拜稽首 對揚王休 作召公考 天子萬壽]”라고 하였다. <詩經 江漢>
강한[江漢] 시경(詩經)의 편명이다. 주나라 선왕(宣王)이 소목공(召穆公)을 시켜 회수(淮水) 남쪽의 오랑캐를 정벌한 것을, 윤길보(尹吉甫)가 찬미한 내용이다.
강한[江漢] 장강(長江)과 한수(漢水)로, 형초(荊楚) 일대를 가리킨다. 왕유(王維)의 ‘촉 땅에 유람하러 가는 최구 흥광을 보내며[送崔九興光游蜀]’ 시에 “강한이라 풍류의 고장에서, 노니는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는고.[江漢風流地 游人何處歸]”라 하였다.
강한갱장[江漢羹牆] 돌아가신 선사(先師)를 추모하여 찬미하는 마음을 말한다. 강한은, 공자가 죽은 뒤에 제자들이 유약(有若)의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자를 섬기던 예로 그를 섬기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자께서는 강한으로 씻는 것과 같으며,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갱장은, 옛날에 요(堯) 임금이 죽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 우러러 사모하였는데, 앉아 있을 때면 요 임금의 모습이 담장[牆]에 보이고, 밥을 먹을 때면 국[羹]에 보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
강한국지기[江漢國之紀]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월(四月)에 “넘실거리는 강한의 물, 남쪽 나라에 물 대 주네.[滔滔江漢 南國之紀]”라는 말이 있다.
강한귀[江漢歸] 강한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물길로 배를 타고 돌아왔다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 회파상유(懷灞上遊)에 “눈앞에 펼쳐진 고금의 뜻이여. 강한에서 한 번 돌아가는 배를 타노라.[眼前古今意 江漢一歸舟]”라 하였다.
강한무조종[江漢無朝宗]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마치 백관이 임금에게 조회하듯, 그렇게 온갖 물줄기가 바다로 모여든다.[江漢朝宗于海.]”라는 말이 나온다. 물줄기가 바다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도한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기 때문에 여러 제후(諸侯)들이 천자(天子)를 우러러 따르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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