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항[强項] 강항은 굳센 목이란 뜻으로, 성품이 강직하여 남의 위력(威力)에 굽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호양공주(湖陽公主)의 종[奴]이 사람을 죽였으므로, 당시 낙양령(洛陽令)으로 있던 동선(董宣)이 그를 잡아다 죽이었다. 그러자 공주가 이 일을 임금께 하소연한 결과, 마침내 임금이 동선을 잡아다 놓고 공주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자, 억지로 머리를 조아리게 하니, 동선이 두 팔로 땅을 힘껏 버티어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으므로, 임금이 마침내 강항령(强項令)을 내보내라고 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董宣傳>
강항령[强項令] 강직하여 굴(屈)하지 않는 현령(縣令)이란 뜻으로, 후한(後漢) 때의 동선(董宣)을 가리킨 말이다. 동선이 낙양령(洛陽令)으로 있을 때, 호양공주[湖陽公主 광무제(光武帝)의 손위 누이임]의 종이 대낮에 사람을 죽여 공주의 집에 숨겨놓았으나 옥리(獄吏)가 그를 체포하지 못했는데, 뒤에 공주가 그 종을 데리고 출행하는 때를 당하여 동선이 길에서 공주의 행차를 정지시키고 그 종을 끌어내려 때려 죽였다. 공주가 그 일을 임금에게 하소연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동선을 불러다 놓고 매를 때려 죽이려고 하자, 동선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성덕으로 나라를 중흥시키고서 종을 놓아 선량한 사람을 죽인다면 장차 어떻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매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하겠습니다.”라 하고는 머리로 기둥을 들이받아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황문(黃門)을 시켜 동선을 붙잡게 하고 동선으로 하여금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드리도록 하였으나, 동선은 두 손으로 땅을 힘껏 버티고서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임금이 결국 그를 강직하게 여겨, 강항령을 내보내고 돈 삼십만을 하사하라고 조칙을 내리니, 이로부터 낙양의 강호들이 동선을 대단히 무서워하여 불법을 자행하지 못하였다. <後漢書 卷77 酷吏傳 董宣>
강항령[強項令]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의 강직하기로 유명한 동선(董宣)을 말한다. 그가 낙양 영(洛陽令)이 되었을 때, 대낮에 살인을 한 공주 유모의 노비를, 공주가 외출할 때를 기다렸다가 공주가 타고 가는 수레에서 끌어내려 처형하였다. 공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광무제가 진노하여 그를 잡아오게 하여 신문하자, 그는 법을 집행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 뒤에 광무제가 공주에게 사과하도록 하였으나, 끝까지 고개를 숙여 잘못을 시인하지 않아 ‘강항령(強項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한다. <後漢書 卷77 董宣列傳>
강해[江海] 강과 바닷가. 장자(莊子) 천도(天道)편 제2장에 “강과 바닷가 산림 속에 은거하는 선비[江海山林之士]”라는 표현이 있으며 양왕(讓王)편에도 “몸이 강과 바닷가에 있다.[身在江海之上]”고 한 표현이 있는 것처럼 은둔하기에 적당한 장소[隱遁의 名所]를 말한다.
강해[江海] 오흥(吳興)을 지칭한다. 오흥은 태호(太湖)와 접해 있고, 동해(東海)와 멀지 않기에 ‘강해’(江海)라 한 것이다. 또는 서울과 떨어진 지방이라는 점에서 ‘강호(江湖)’로 보기도 한다. <杜牧 將赴吳興登樂游原>
강해[江海] 은사(隱士)의 거처를 말한다. 장자(莊子) 각의(刻意)에 “강해의 선비는 세상을 피하는 사람[江海之士, 避世之人.]”이라 하였다.
강해별[江海別] ‘강해(江海)’는 사방각지(四方各地)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말하며, 은거(隱居)의 뜻도 있다.
강해사[江海士] 사방으로 자유롭게 다니며 강해에 마음을 두는 호방한 사람을 말한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맹생시(孟生詩)에 “맹생은 강해의 선비로 예스러운 용모에 예스러운 마음이라.[孟生江海士 古貌又古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생은 맹교(孟郊)이다.
강해심[江海心] 벼슬하지 않고 산수(山水) 사이에 은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
강해하백천[江海下百川] 도덕경(道德經) 66장에 “강과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래에 잘 처하기 때문이다.[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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