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개주성[開州城]~개주진문[開幬進蚊]~개중유인발형초[箇中游刃發硎初]


개주[開州]  개성(開城)의 고려 시대 때 이름이다.

개주[蓋州]  보장왕 4년에 당나라가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개주로 삼았다. 개모성은 현재의 중국 요령성 심양시(瀋陽市)에 있던 성이다.

개주[盖州]  지금의 중국 요령성(遼寧省)에 있었던 주(州)의 이름으로, 청나라 때는 개평현(蓋平縣)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제12 하(下)권 충렬왕(忠烈王) 15년에 의하면, 심양(瀋陽)에서 남쪽으로 36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쪽은 요해(遼海)와 붙어 있다고 하였다.

개주성[開州城]  요동 지방 봉황성(鳳凰城) 근처에 있는 성 이름이다.

개주진문[開幬進蚊]  남조(南朝) 양(梁)나라 원제(元帝)의 금루자(金樓子) 입언 상(立言上)에 “제 환공(齊桓公)이 침상에 누워 관중(管仲)에게 말하기를, ‘나는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많으니, 더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한 생명이라도 살 자리를 잃으면 근심스러운데, 지금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을 보니 배불리 먹지 못해 굶주린 것이다.’라고 하고는 휘장을 걷어 모기가 물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개준북해[開罇北海]  후한(後漢) 말년에 북해상(北海相)을 지냈던 공융(孔融)이 “자리 위에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술동이 속에 술이 늘 비지만 않는다면, 내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면서 술과 빈객을 무척 사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개중[箇中]  이 가운데.

개중유인발형초[箇中游刃發硎初]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지금 내가 19년 동안 칼을 잡고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아 왔는데, 칼날을 보면 지금 막 숫돌에서 꺼낸 것처럼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刀刃若新發於硎] 소의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틈이 있는 반면, 나의 칼날은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나의 칼날을 틈이 있는 그 사이로 찔러 넣으면, 그 공간이 그야말로 널찍하기만 하여 칼을 놀리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라는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유명한 일화가 실려 있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