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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락사현[去樂辭顯]~거란해[契丹奚]~거래부비[去來浮費]


거락사현[去樂辭顯]  안락한 생활을 그만두고 높은 지위에서 물러남. 현(顯)은 이름이 널리 드러나는 높은 벼슬자리를 뜻한다.

거란[契丹]  원래 거란족은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혼혈족으로 구성된 유목민족으로 5세기 이래로 요하(遼河) 유역에 거주하였는데 당나라 말기 중원지역이 혼란에 빠지자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주변 부족을 통합한 다음 거란을 건국하여 황제를 호칭했다. 이후 중원(中原)으로 진출, 화북지역을 장악한 다음 946년 국호를 요(遼)로 개칭하였다.

거란장[契丹場]  거란 사람 포로들의 집단 수용지(收容地). 고려 고종(高宗) 6년(1219)에 장군 김취려(金就礪) 등이 거란족의 강동성(江東城)을 함락시키고 항복한 군졸 5만여 명을 거두어 국내의 여러 곳에 나누어 살게 하였던 곳이다.

거란해[契丹奚]  거란(契丹)은 본래 동호족(東胡族)인데 4세기 이래로 요하(遼河) 상류인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시라무렌, 潢水황수)와 노합하(老哈河 랴오허, 土河토하) 유역 일대에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유목과 수렵을 생업으로 하며 거주하였다. 인접한 고구려(高句麗)를 자주 침략하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에게 정벌을 당해 일부는 고구려에 복속되고, 나머지는 흩어져 살다가 뒤에 당(唐)나라에 복속되었다. 중국의 혼란기인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에 통일의 기운이 일어나면서, 916년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거란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하였으며, 뒤에 국명을 요(遼)로 바꿨다. 해(奚)는 4세기 무렵부터 동몽고(東蒙古)의 노합하(老哈河)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면서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남쪽 연안 유역의 거란족(契丹族)과 이웃하고 있던 선비족(鮮卑族)의 한 부족이다. 처음에는 고막해(庫莫奚)라고 불렀으나, 수(隋)나라 이후로는 해(奚)라고 칭하였다. 7세기 전반기부터 당(唐)나라에 복속하였으며, 당나라에서는 해(奚)의 추장들에게 도독(都督)이나 자사(刺史) 등의 관직을 주어서 그들을 예속시키는 기미정책(羈縻政策)을 실시하였다.

거래금[去來今]  불교(佛敎)의 용어로, 과거(過去)·미래(未來)·현재(現在)의 삼세(三世)를 말한다.

거래부비[去來浮費]  거래부비는 관(官) 소유의 말을 민간에 분양하느라 왕래하는 데 드는 잡비 명목으로 설정된 세목이다.

거량[據梁]  인명. 가공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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