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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로가[去魯歌]~거록파진[巨鹿破秦]~거루행[駏䮫行]


거로[佉盧]  인명으로 거루(佉樓)라고도 하는데 옛날의 글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글이 좌행(左行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씀)인데 지금은 실전(失傳)되었다. <法苑珠林>

거로가[去魯歌]  공자(孔子)가 노(魯) 나라를 떠날 때 지은 가사이다. 사이가(師已歌) 또는 사을가(師乙歌)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노환자(魯桓子)가 제(齊) 나라 여악(女樂)을 받아들여 3일 동안 정무를 돌보지 않고, 번육(膰肉) 또한 대부(大夫)에 이르지 않자 공자가 노 나라를 떠나면서, ‘彼婦之口 可以出走 彼婦之謁 可以死敗’라는 가사를 지었다.”고 하였다.

거로이번육[去魯以膰肉]  맹자(孟子) 고자하(告子下) “공자는 노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었으나 중용되지 않고, 제사에 참여했으나 제사 고기 또한 보내지 않으니, 이에 매우 바삐 노나라를 떠났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제사 고기를 보내지 않아 떠난 것이지만 실지로는 노나라가 예(禮)를 잃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다.

거로정[去魯情]  공자(孔子)가 그의 본국인 노국(魯國)을 버리고 타국으로 갈 적에 “나의 더딘 걸음이여[遲遲吾行也].”라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마음이다.

거록[鉅鹿]  거록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성 이름이다. 일찍이 한 문제(漢文帝)가 흉노족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중에 낭중서장(郞中署長) 풍당(馮唐)에게 말하기를 “이전에 누가 말하기를 ‘옛날 조나라의 어진 장수인 이제(李齊)가 거록에서 잘 싸웠다.’ 하기에, 지금도 내가 밥 먹을 때마다 그 당시의 거록을 못 잊는다.” 하면서 이제와 같은 장수를 구하기를 원하였다. <史記 卷102 馮唐列傳>

거록[鉅鹿]  거록은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군대를 격파한 곳으로 지금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있다.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거록을 구원하려는 제후의 군대들이 병력을 풀지 못하다가 초(楚)나라가 진나라를 치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구경하였다.”라고 하였다.

거록성[鉅鹿城]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있는 성으로, 일찍이 항우(項羽)가 이곳에서 진(秦)나라 장감(章邯)의 군사를 격파한 일이 있다.

거록파진[巨鹿破秦]  항우가 거록(지금의 하북성 평향현平鄕縣)에서 진나라 군대를 대파한 이야기인데,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자세히 보인다.

거루행[駏䮫行]  고구려 태무왕(太武王) 3년(20)에 왕이 골구천(骨句川)에서 사냥을 하다가 신마(神馬)를 얻어 거루(駏䮫)라고 이름을 붙였다. 5년에 왕이 부여(扶餘)를 공격하여 그 왕을 잡아서 참수하였다. 또한 여러 겹으로 포위되었다가 사잇길을 통해서 밤에 빠져나왔는데, 이때에 골구천에서 얻었던 신마를 잃었다. 3월에 신마 거루가 부여의 말 100필을 데리고 함께 학반령(鶴盤嶺) 아래의 차형곡(車迥谷)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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