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촉[擧燭] 본의 아닌 실수가 있어도 나중에 좋은 결과를 맺게 되는 것을 말한다. 초(楚)나라 영(郢)에 사는 사람이 연(燕)나라 상국(相國)에게 밤에 편지를 쓸 적에, 불이 어둡자 “촛불을 들어라.[擧燭]”라고 명령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촉’이라는 두 글자를 편지 속에 잘못 기입하였다. 그런데 연나라 상국이 그 편지를 받고서 “거촉은 밝음을 숭상하는 것인데, 밝음을 숭상하려면 현인을 발탁하여 등용해야 한다.[擧燭者 尙明也 尙明也者 擧賢而任之]”라고 생각하고는 왕에게 건의한 결과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거촉[擧燭]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영(郢) 땅 사람이 연(燕) 나라 상국(相國)에게 편지를 쓸 때 촛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촛불을 들어라[擧燭]’ 하면서 무의식중에 이 두 글자를 편지에 써넣고 말았다. 그런데 그 편지를 읽은 연 나라 상국은 ‘거촉(擧燭)은 밝음을 숭상하라는 뜻이요, 밝음을 숭상하는 것은 어진이를 등용하라는 뜻이다.’ 하고는, 임금에게 아뢰어 이를 실천하였으므로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그러나 글의 본뜻은 아니었다.” 하였다.
거촉만노발[炬燭萬弩發]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장수 손빈(孫臏)이 그의 원수인 위(魏)나라 장수 방연(龐涓)과 싸울 때 거짓으로 후퇴하여 방연의 군사들을 유인하였는데,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아궁이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도망친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런 다음 위나라 마릉(馬陵)이란 곳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방연이 지나갈 곳에 있는 큰 나무를 깎아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라고 써 놓고는 방연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과연 방연이 밤에 그 나무 아래 와서 횃불을 켜고 글을 읽었는데, 손빈의 군사들이 일제히 쇠뇌를 발사하여 위군을 전멸시켰다. <史記 卷65 孫臏列傳>
거추사[巨酋使] 대신사(大臣使)를 포함한 유력 대명(大名)의 사신을 가리킨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제사정례(諸使定例)에 의하면 “전산(畠山), 세천(細川), 좌무위(左武衛), 경극(京極), 산명(山名), 대내(大內), 소이(小二) 등을 거추(巨酋)라 한다.”고 규정하여 성종실록 7년 1월 병자조에 기록된 관제대신(管提大臣) 6명 이외에 소이(小二)씨를 포함시키고 있다.
거출녹파[蕖出綠波]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하락(河洛)의 여신(女神)인 복비(宓妃)를 묘사하여 “연꽃이 푸른 물결 위로 솟구친 듯 선명도 하다.[灼若芙蕖出綠波]”라고 표현한 말이 나온다.
거취[去就] 추종하고 추종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거취화이시지[遽取火而視之] 허둥지둥 등불을 들고 자식을 들여다봄. 거(遽)는 허둥지둥하면서 급히 서두는 모양이다.
거칠부[居漆夫] 6세기경의 신라 사람으로, 진흥왕(眞興王) 6년(545)에 처음 국사(國史)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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