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건안다[建安茶]~건안체[建安體]~건안황초[建安黃初]


건악[謇諤]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함.

건안[建安]  건안은 한(漢)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이때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불리던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應瑒), 유정(劉楨)과 조조(曹操), 조비(曹丕) 등이 문장을 과시하였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唐詩)의 품격을 논함에 있어서는 흔히 초당(初唐), 성당(盛唐), 만당(晩唐)의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초당 때에는 왕발(王勃), 낙빈왕(駱賓王), 송지문(宋之問) 등이 주로 활동하였으며, 성당 때에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맹호연(孟浩然) 등이 활동하였고, 만당 때에는 이상은(李商隱), 온정균(溫庭筠) 등이 활동하였다.

건안[建安]  건안은 후한(後漢) 헌제(獻帝)의 연호로 이때에는 조식(曹植)의 부자를 포함하여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라는 공융(孔融)·진림(陳琳)·왕찬(王粲)·서간(徐幹)·완우(阮瑀)·응창(鷹瑒)·유정(劉楨) 등이 동시에 문학으로 이름을 떨쳤으므로 이들 시체를 건안골(建安骨) 또는 건안체(建安體)라 한다. 경룡은 당(唐) 나라 중종(中宗)의 연호이고 개원은 현종(玄宗)의 연호이며, 대력은 대종(代宗)의 연호로, 당대의 시인을 4기로 나누는데 중종 경룡에서 현종 개원까지를 초당(初唐), 개원에서 대종 대력까지를 성당(盛唐), 대력에서 문종(文宗) 태화(太和)까지를 중당(中唐), 태화에서 당말(唐末)까지를 만당(晩唐)이라 칭한다.

건안[建安]  동한(東漢)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연호이다. 이때 조자건(曹子建) 부자와 업중(鄴中)의 일곱 사람들의 시가 유명했으므로 건안체(建安體)라는 말까지 생겼다. <滄浪詩話 詩體>

건안[建安]  후한(後漢) 시대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연호이다. 이 시기엔 조조(曹操)·조비(曹丕)·조식(曹植) 그리고 건안 칠자(建安七子) 등의 문인들이 활약하여 수많은 문학작품을 저술하였다. 그 문풍이 호방하고 굳건하여 건안풍골(建安風骨)이라고 부른다. 후세에 시문의 전범으로 삼았다.

건안다[建安茶]  양만리(楊萬里)의 시에 “傳呼惠山水 來瀹建安茶”라 하였다.

건안다사[建安多士]  한 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이때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불리던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應瑒), 유정(劉楨)과 조조(曹操), 조비(曹丕) 등이 문장을 과시하였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을 가지고 있었다.

건안엽씨[建安葉氏]  이름은 채(采)이고 자는 중규(仲圭)이니, 근사록(近思錄)의 주(註)를 내었다.

건안자[建安子]  후한 헌제(獻帝) 때인 건안(建安) 연간에 조조(曹操]) 부자 밑에서 활약한 문학집단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재자(才子) 7인인 건안칠자(建安七子)를 말하는데, 공융(孔融 字 文擧)·진림(陳琳 字 孔障)·왕찬(王粲 字 仲宣)·서간(徐幹 字 偉長)·완우(阮瑀 字 元瑜)·응창(應瑒 字 德璉)·유정(劉楨 字 公幹)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들은 ‘업하(鄴下)의 7자’라고도 하는데 ‘삼조(三曹)’의 위성(衛星)으로서, 신흥 업도(鄴都)에서 20년 동안 활발히 시작(詩作)을 했다. 그 중에도 왕찬·유정이 뛰어났으며 이 집단이 5언시의 발전과 문학의 서정화에 이룩한 공이 매우 크다.

건안체[建安體]  건안은 한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전체적으로 후한 시대를 칭한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불리던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양(應㻛), 유정(劉楨)과 조조(曹操), 조비(曹丕) 등이 문장을 과시하였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을 가지고 있었다. 후대에는 특별히 이들의 문장을 건안체(建安體)라고 칭하였다.

건안체[建安體]  한(漢) 나라 건안(建安) 때 조자건(曹子建) 부자(父子)와 업중 칠자(鄴中七子)의 시(詩)를 가리킨다.

건안체[建安體]  한말(漢末)의 건안(建安) 연간에 시문(詩文)으로 명성을 떨치며 건안칠자(建安七子)라 일컬어졌던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應瑒), 유정(劉楨) 및 조식(曹植) 부자(父子)의 시체(詩體)를 말한다.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을 지니고 있었다.

건안칠자[建安七子]  건안칠자는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건안 연간에 조조(曹操) 부자 밑에서 활약한 문학 집단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재자(才子)인 공융(孔融), 완우(阮瑀), 서간(徐幹), 진림(陳琳), 응창(應瑒), 왕찬(王粲), 유정(劉楨)인데, 이들의 문학은 시부(詩賦)를 중심으로 하여 격조가 높고 부화(浮華)에 흐르는 폐단이 없었다고 한다.

건안칠재자[建安七才子]  건안칠자(建安七子).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연호인 건안(建安) 연간에 활동한 일곱 문인을 말한다. 조비(曹丕)의 전론(典論)에서 처음 거론되었는데, 노국(魯國)의 공융(孔融), 광릉(廣陵)의 진림(陳琳), 산양(山陽)의 왕찬(王粲), 북해(北海)의 서간(徐幹), 진류(陳留)의 완우(阮瑀), 여남(汝南)의 응창(應瑒), 동평(東平)의 유정(劉楨)이다.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詩風)을 가지고 있었다.

건안황초[建安黃初]  건안은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연호이며, 황초는 위 문제(魏文帝)의 연호이다. 건안과 황초의 연대는 서기 196년에서 226년까지에 이르며, 이 시기에 조식(曹植) 부자를 위시한 많은 시인이 나서 이 시풍을 건안체(建安體)라 하였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