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골[乞骨] 신하로서 죽을 때까지 국가에 봉사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나이가 많으면 뼈다귀를 고향에 돌아가 묻겠사오니 뼈 주기를 빈다는 것은 벼슬을 사양하는 것을 말함이다.
걸교[걸撟] 높이 올라가다.
걸교[乞巧] 걸교는 칠석날 부녀자들이 색실을 맺어 놓고 일곱 바늘에 꿰어 바느질 잘하게 되는 솜씨를 비는 것인데, 거미가 외[瓜] 위에 그물을 치면 성공한 것이라 한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칠석날에는 부녀자들이 채색실을 맺어 칠공침(七共鍼)에 꿰어 놓은 다음 오이와 과일을 뜨락에 차려놓고 직녀에게 걸교를 하는데 거미 새끼가 오이 위에 내려와 그물을 치면 소원대로 된다고 좋아했다.” 하였다.
걸교[乞巧] 걸교는 칠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과일과 떡을 차려놓고 직녀(織女)와 견우(牽牛)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게 해 달라고 빌던 풍속을 말한다.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자기의 졸(拙)을 없애주기를 기원하며 지은 걸교문(乞巧文)이 초사(楚辭) 후어(後語) 권5에 실려 있다.
걸교[乞巧] 옛 풍속에 칠석날 밤이면 부녀자들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를 늘게 해 달라고 기원하던 의식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일직이 자신의 모신책(謀身策)에 대한 졸렬함을 버리고자 견우, 직녀에게 기원한 결과, 직녀가 나타나서 고하기를 “하늘이 한번 명한 바이니, 중간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하자, 유종원이 스스로 말하기를 “졸렬함을 종신토록 지키다가 그대로 죽은들 무엇을 상관하랴.[抱拙終身 以死誰惕]” 한 데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8 乞巧文>
걸교루[乞巧樓] 칠석일(七夕日)에 뜰에다 세워서 채색으로 꾸민 누(樓). 걸교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견우·직녀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제사이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의하면, 음력 7월 7일이면 궁중(宮中)에서 비단으로 높다란 누각을 결성(結成)하여 과일과 술과 안주를 진설해서 견우와 직녀 두 별에게 제사하고, 비빈(妃嬪)들은 각각 달을 향하여 구공침(九孔針)에 오색실을 꿰는데, 그 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면 바느질 솜씨가 늘 조짐으로 여겼으며, 또 청상곡(淸商曲)을 연주하여 밤새도록 연락(宴樂)을 즐기고 이 누각을 걸교루(乞巧樓)라 일렀다고 한다.
걸교문[乞巧文] 당나라의 문장가인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문장 이름이다. 시문 짓는 재주가 훌륭해지기를 비는 글을 뜻한다. 예로부터 칠석(七夕) 날 밤이면 부녀자들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을 걸교(乞巧)라 하는데, 당대(當代)의 문장가(文章家)인 유종원(柳宗元)이 일찍이 자신의 모신책(謀身策)의 졸렬함을 버리려는 뜻에서 걸교문을 지어 견우와 직녀에게 많은 말로써 기원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직녀가 와서 “하늘이 한 번 명한 바이니, 중간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고해 주자, 그 말을 듣고는 유종원이 스스로 말하기를 “종신토록 졸렬함을 지키다가, 그대로 죽은들 무엇을 상심하랴.[抱拙終身 以死誰惕]”라고 하였다. <柳河東集 卷8>
걸교영주[乞巧縈蛛] 칠석날에 아녀자들이 베를 잘 짜게 해 달라고 직녀에게 비는데, 아침에 거미줄이 오이 덩굴에 걸렸으면 직녀가 솜씨를 빌려 주었다고 여겨 기뻐하였다. <荊楚歲時記>
걸교희주[乞巧喜蛛]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칠석날에는 부인이 채색실을 맺어 칠공침(七孔鍼)에 꿰어 놓은 다음 오이 과일을 뜨락에 차려놓고 직녀에게 걸교를 하는데 거미새끼가 오이 위에 내려와 그물을 치면 소원대로 된다고 좋아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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