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적[檢迹] 행검(行檢)과 같은 말이다. 단속하고 조신하여 방종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악부시집(樂府詩集) 67권 장화(張華)의 유렵편(遊獵篇)에도 “백양(伯陽)이 날 위해 훈계했으니, 몸가짐 단속하여[檢迹] 맑은 모범 남기리라.”고 하였으니, 검적(檢迹)이란 육조(六朝)시대에 널리 사용되던 어휘이다.
검전도회[檢田都會] 조선 후기 각 군현의 토지를 도사(都事)의 입회하에 점검하던 일. 행전도회(行田都會)라고도 한다.
검존사실[儉存奢失] 검약하는 사람은 번창하고, 사치하는 사람은 망함을 이른다.
검주지려[黔州之驢] 졸렬한 솜씨를 비유한 말이다. 검주(黔州)에는 노새가 없는데 그곳에 어떤 사람이 노새를 끌고 갔을 때 범이 보고 노새의 우는 소리가 크므로 두려워하였는데, 노새의 발길에 채어 보니 노새의 힘이 보잘것없는 것을 알고 마침내 노새를 잡아먹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9 三戒>
검중무군[黔中巫郡] 모두 초나라의 지명. 검중(黔中)은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서북부 및 귀주성(貴州省) 동북부 일대이고, 무군(巫郡)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무산현(巫山縣)이다.
검즉고[儉則固]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호화로우면 거만해지기 쉽고, 검약하면 고루하게 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奢則不孫 儉則固]”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검지[劍池]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 호구산(虎丘山)에 있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闔閭)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넣어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그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검지려[黔之驢] 검(黔) 땅 나귀. 겉치레뿐이고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재주를 지닌 것을 뜻한다. 중국의 검주(黔州)에는 본디 나귀[驢]가 없는데, 그곳에 어떤 사람이 나귀를 끌고 갔다. 그곳에 살던 호랑이가 나귀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는 몹시 두려워하였는데, 나귀의 발길에 차여 보니 나귀의 힘이 보잘것없었다. 이에 마침내 나귀를 잡아먹었다는 고사가 있다. <柳河東集 卷19 黔之驢>
검진태아검[劍津太阿劍] 검진은 건계(建溪) 또는 동계(東溪)라고도 하는데, 민강(閩江)의 상류이다. 진(晉)나라 뇌환(雷煥)의 보검인 태아(太阿)가 물에 떨어져 용이 된 곳이기 때문에 또 검담(劍潭)·용담(龍潭)·검계(劍溪)·용진(龍津)이라고도 한다. <嘉慶重修一統志 延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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