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가도[蒹葭圖] 추수정(秋水亭)은 평안도 순천군(順天郡)에 있었던 정자이다. 조선 영조, 정조 때 명신아저 문장가인 황경원(黃景源)의 추수정기(秋水亭記)에 의하면 강한(江漢 황경원의 호)이 이곳에 부임하였을 때 순강의 동쪽 와룡주(臥龍洲)에 갈대가 무성한 곳에 서 있던 이 정자에 가서 겸가시(蒹葭詩)를 떠올리며 이인(伊人: 은자隱者)을 그리워하였다고 한다. 겸가시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됨을 애석하게 여긴 시로 시경(詩經) 진풍(秦風)에 있다. “긴 갈대 푸르른데,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이른바 저 사람이 물 저편에 있도다. 물길 거슬러 올라가나, 험한 길이 멀기도 하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겸가옥수[蒹葭玉樹] 겸(蒹)과 가(葭)는 하찮은 수초(水草)의 이름인데, 자신을 낮추는 겸사로 많이 사용한다. 옥수(玉樹)는 훌륭한 자제(子弟)나 훌륭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왕후의 아우인 모증(毛曾)을 황문시랑(黃門侍郞) 하후현(夏侯玄)과 함께 앉게 하자, 당시 사람들이 “갈대가 옥수에 의지한 것과 같다.[蒹葭倚玉樹]”라고 하였다고 한다. 하찮은 모증이 옥수 같은 하후현 옆에 앉았다는 뜻인데, 후세에는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양하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삼국지(三國志) 권9 위서(魏書) 하후현전(夏侯玄傳) 등에 실려 있다.
겸가의옥[蒹葭倚玉]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의 “위 명제(魏明帝)가 왕후의 동생 모증(毛曾)에게 하후현(夏侯玄)과 함께 앉게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갈대가 옥나무에 기대어 있다고 말하였다.”라고 한데서 나온 것으로 못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겸가창창[蒹葭蒼蒼] 시경(詩經) 겸가(蒹葭)에 “긴 갈대 푸르른데,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바로 그 사람이 물 저편에 있도다. 물길 거슬러 올라가나, 길이 험하고 멀기도 하네. 물길 따라 좇아가려 하나 물의 가운데에 완연히 보이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 遡游從之 宛在水中央]”라고 하였다. 갈대가 아직 시들기 전에 이슬이 서리로 변하였고, 만나고 싶은 이인(伊人)은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도저히 만날 길이 없어 애석하게 여기는 뜻이다.
겸가추위[蒹葭萑葦] 겸가(蒹葭)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진풍(秦風)의 편명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 가사에 “갈대가 푸르게 우거진 이때에 흰 이슬이 내리다가 서리로 변했네.[蒹葭蒼蒼 白露爲霜]”라고 하였는데, 위(葦)의 어린 것은 겸가(蒹葭)라 하고 다 큰 것은 추위(萑葦)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