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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독[經溝瀆]~경구비마[輕裘肥馬]~경구완대[輕裘緩帶]


경구[景駒]  반진군(反秦軍)의 영수 진승(陳勝)이 싸움 중 전사하자 진가(秦嘉)에 의해 초왕으로 추대된 경구(景駒)는 팽성(彭城)에 주둔했다. 유방(劉邦)과 장량(張良)이 찾아와 경구를 섬겼다. 이때 하비(下邳)에 주둔하다가 북진하려던 항량과 그의 북상을 저지하려고 하던 경구와 진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경구와 진가는 싸움에서 지고 달아나다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동남에서 싸움 중에 죽고 그 군사들은 모두 항량의 군대에 합쳐졌다. 유방과 장량도 같이 항량의 군대에 합류했다.

경구[磬口]  납매(蠟梅)의 좋은 것. 반쯤 벌어진 매화의 꽃봉오리를 말한다. 또 납매(臘梅) 중에는 활짝 피었을 때에도 꽃잎이 언제나 반절 정도밖에 벌어지지 않는 품종이 있는데, 이를 경구매(磬口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구[京口]  옛 성의 이름으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를 이른다. 손권(孫權)이 오(吳)나라의 수도를 소주(蘇州)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경성(京城)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건업(建業)으로 수도를 옮긴 뒤 이곳을 경구진(京口鎭)이라고 불렀다. 동진(東晉)과 남조(南朝) 때는 경구성(京口城)이라고 불렀다. 고대에는 장강(長江) 하류의 군사요충지였다.

경구[京口]  한강 어귀를 뜻하는 지명으로, 경강(京江)이라고도 한다.

경구독[經溝瀆]  개천에서 목매어 자살한 자를 가리킨다. 공자는 제(齊)의 공자(公子) 자규(子糾)가 죽었으나 그의 스승이었던 관중(管仲)이 죽지 않은 사실을 논하면서 “어찌 필부(匹夫)·필부(匹婦)의 조그만 신의를 지키듯 스스로 구독에 목매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게 하겠는가.”라 하였다. <論語 憲問>

경구보[瓊玖報]  아름다운 구슬로 상대방의 호의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에 “나에게 오얏을 주었으니 경구로 보답하리라.”라 하였다.

경구비마[輕裘肥馬]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한 사람의 차림새를 일컫는 말이다.

경구여문세환경[磬口如聞細喚卿]  반쯤 핀 매화가 친절하게 말을 할 듯하다는 뜻이다.경구(磬口)는 반쯤 벌어진 매화의 꽃봉오리를 말한다. 경(卿)은 자네라는 뜻으로 부인이 남편을 대하여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므로 친절한 어감을 말한다.

경구완대(輕裘緩帶]  살벌한 전쟁터의 분위기와는 달리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는 뜻인데, 진(晉)나라 장군 양호(羊祜)가 진중(陣中)에서 갑옷을 입는 대신, 가볍고 따뜻한 옷[輕裘]에 허리띠를 헐렁하게 매고[緩帶] 한가하게 소요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晉書 卷34 羊祜列傳>

경구완대[輕裘緩帶]  군중(軍中)에서도 갑옷을 입지 않고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있음을 이른 말로, 즉 전쟁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군중(軍中)에서 늘 가벼운 옷차림에 허리띠도 느슨하게 한 채[在軍常輕裘緩帶] 갑옷도 입지 않았으며, 영각(鈴閣)에서 시위하는 군사도 십여 인에 불과하였던 고사가 있다. <晉書 羊祜傳>

경구완대[輕裘緩帶]  진(晉)나라 장군 양호(羊祜)는 군중(軍中)에 있을 때에도 항상 가벼운 갖옷을 입고 띠를 느슨히 매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종용(從容)하고 한가로운 모습을 형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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