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낙과신[輕諾寡信] 가벼운 승낙은 믿음성이 적다는 말이다. 도덕경(道德經) 63장에 “가볍게 승낙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의가 적고, 일을 쉽게 여기는 일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움을 많이 당하게 된다.[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라고 하였다.
경남산지죽[罄南山之竹] 통감절요(通鑑節要) 권34 수기(隋紀) 공제(恭帝)에 “이밀이 군현에 격문을 보내 수 양제의 10가지 죄를 나열하고 또 말하기를 ‘남산의 대나무를 텅 비게 하여도 그 죄를 다 쓸 수가 없고 동해의 파도를 터놓아도 남긴 악을 다 씻어 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조군언이 지은 말이다.[李密移檄郡縣 數煬帝十罪 且曰 罄南山之竹 書罪無窮 決東海之波 流惡難盡 祖君彦之辭也]”라고 하였다.
경남중[耿南仲] 개봉(開封) 사람으로 원풍(元豐) 때에 진사에 합격하였다. 흠종(欽宗)이 즉위하자 상서좌승(尙書左丞)에 특진되었다. 그는 일찍이 흠종이 동궁(東宮)으로 있을 때에 12년간이나 섬겼으므로 즉위하게 되면 자기가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하리라 했었는데 오민(吳敏)·이강(李綱)이 오히려 자기보다 지위가 높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그들의 의론이면 무엇이든 배척하고 따르지 않았다. 이때 금(金)의 침략이 심화되어 화의(和議)가 일었는데, 이강 등이 반대하자 남중은 끝까지 그들을 비방하고 화의를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전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 송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宋史 卷312 耿南仲列傳>
경년[頃年] 근년(近年).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몇 해.
경노치진염[京路緇塵染] 공명(功名)과 이록(利祿)을 좇느라 서울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위고언선증부시(爲顧彦先贈婦詩)에 “서울 땅 낙양에는 풍진이 많고 많아, 흰 옷이 물들어서 검고 또 검어지네.[京城洛陽多風塵 白衣染得黑又黑]”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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