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룡[鏡龍] 당 현종(唐玄宗) 천보(天寶) 3년에 양주(揚州)에서 등쪽에 반룡(盤龍)이 새겨진 수심경(水心鏡) 하나를 바쳐왔던바, 이 거울은 본디 경장(鏡匠) 여휘(呂暉)가 선인(仙人) 용호(龍護)의 가르침을 받아 5월 5일 오시(午時)에 양자강(揚子江) 위에서 주조(鑄造)했다는 것인데, 그 후 천보 7년에 이르러 가뭄이 오래 계속되자, 현종이 친히 용당(龍堂)에 가서 기도를 해도 응험이 없으므로, 현종이 마침내 도사(道士) 섭법선(葉法善)을 불러서 이 수심경의 반룡에게 함께 기도한 결과 단비가 무려 7일 동안이나 계속 내렸다는 고사가 있다.
경루[瓊樓] 경루는 경루옥우(瓊樓玉宇) 혹은 경루금궐(瓊樓金闕)의 준말로, 신화 속에 나오는 달 속의 선궁(仙宮)에 있다는 구슬로 장식한 누각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화려한 누각을 가리킨다.
경루[瓊樓] 십이경루(十二瓊樓)로, 선경(仙境)에 있다는 구슬로 장식한 열두 개의 누대(樓臺)인데, 전하여 대궐의 누각을 가리킨다.
경루[瓊樓] 경루옥우(瓊樓玉宇)의 준말로, 신화 속에 나오는 월궁(月宮) 속의 누각을 말하는데, 보통 임금이 있는 대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소식(蘇軾)이 송 신종(宋神宗) 희령(煕寧) 9년(1076)에 황주(黃州)로 귀양 가서 지은 병진중추작겸회자유(丙辰中秋作兼懷子由) 가사(歌詞)에 “내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나니, 경루옥우 높은 곳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까 또 걱정일세.[我欲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내용을 신종이 보고는 “소식이 끝내는 임금을 사랑하는구나.[蘇軾終是愛君]”라고 탄식하며 여주(汝州)로 양이(量移)하라고 명했다 한다. <水調歌頭 丙辰中秋作兼懷子由>
경루[瓊樓] 백옥루(白玉樓)로, 천제(天帝) 혹은 신선이 상주(常住)한다는 누각인데, 흔히 문인의 죽음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詩人) 이하(李賀)가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났으나 뜻을 펴지 못했는데, 어느 날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가져온 “상제께서 백옥루를 지었는데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노라.”라는 글을 보고 죽었다. <李賀小傳>
경루[更漏] 물시계를 이용한 때를 알리는 설비. 시간을 알리는 누각(漏刻). 밤 동안의 시간(時間)을 알리는 누수(漏水).
경루옥우[瓊樓玉宇] 소동파가 귀양살이하면서 지은 수조사(水調詞)에 “경루옥우(瓊樓玉宇)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할까만 걱정이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궁녀(宮女)가 그 노래를 부르자 임금이 듣고 “소식(蘇軾)이 끝내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하였다.
경루옥우[瓊樓玉宇] 신화 속에 나오는 월궁(月宮) 속의 누각을 말하는데, 보통 임금이 있는 대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임금을 걱정하는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의 시에서 나온 말이다. 소식(蘇軾)이 송 신종(宋神宗) 희령(煕寧) 9년에 황주(黃州)로 귀양 가서 지은 병진중추작겸회자유(丙辰中秋作兼懷子由) 가사(歌詞)에 “내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나니, 경루옥우 높은 곳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까 또 걱정일세.[我欲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내용을 신종이 보고는 “소식이 끝내는 임금을 사랑하는구나.[蘇軾終是愛君]”라고 탄식하며 여주(汝州)로 양이(量移)하라고 명했다 한다. <水調歌頭 丙辰中秋作兼懷子由>
경루자[更漏子] 옛 사패(詞牌) 이름이다. 46자 또는 49자 혹은 104자로 되어 있다. <詞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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