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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망진[鏡問亡陳]~경문유계[景文遺戒]~경미[瓊糜]


경문[卿門]  상류계급의 집안.

경문망진[鏡問亡陳]  남북조(南北朝) 때에 진(陳) 나라 후주(後主)가 정치를 어지럽혀 북조(北朝)인 수(隋) 나라가 엿보고 있었다. 낙창공주(樂昌公主)의 남편 서덕언(徐德言)이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공주에게 “나라가 망하면 당신은 귀인의 집에 들어갈 것이나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거울 반쪽씩 가졌다가 매년 정월 보름에 수도(首都)의 시장(市場)에 반쪽 거울을 내어다 팔아서 서로 맞추어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서로 만납시다.”라 하더니, 과연 진나라는 망하고, 공주는 양소(楊素)의 집에 들어가 이듬해 정월 보름에 서덕언이 반쪽 거울을 가지고 시장에 갔더니, 공주 역시 종을 시켜 반쪽 거울을 찾고 있으므로, 공주의 거울에다 시(詩)를 써서 보냈다. 그것을 잡고 우는 것을 양소가 보고 그 애처로운 사정을 들어 서덕언을 불러 공주와 만나게 하고 돌려보냈다.

경문명의[敬聞命矣]  삼가 가르침을 받겠음. 명(命)은 가르침. 교(敎)와 같다.

경문유계[景文遺戒]  유계는 죽기 전에 남긴 훈계로, 송(宋)나라 경문공(景文公)이 자신이 죽으면 집안 형편에 맞게 상례를 치르게 하였는데, 상복을 새로 마련하는 대신 평소에 입던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히고, 관은 잡목을 쓰게 하였다. 또한 나라와 백성에게 공을 세운 바가 없으니 시호(諡號)나 증직(贈職)을 받으려 하지 말고, 대가에게 비문(碑文)을 지어 달라고 청하지 말며, 불가(佛家)나 도가(道家)의 제례 의식을 행하지 말게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51 景文遺戒>

경물윤주동[景物潤州同]  동국여지승람 제4권 개성부 상(開城府上)에 “고려의 이자연(李子淵)이 원나라에 들어가 조회하면서 윤주(潤州)의 감로사(甘露寺)에 올라갔다가 강산(江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여 그를 따라간 뱃사공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곳의 형세를 자세히 살펴보고서 가슴속에 기억해 두라.’고 하였다. 그 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뱃사공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천지간에 무릇 형상이 있는 물건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구나 우리 나라는 산천의 경개가 청명하고도 수려하니 어찌 윤주(潤州)와 서로 비슷한 곳이 없겠는가. 너는 작은 배의 짧은 삿대로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다 찾아다니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찾아보라.’고 하자, 뱃사공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 하고 떠났다. 무릇 여섯 번의 추위와 더위를 지나서 비로소 개성부의 서호(西湖)에서 윤주와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윤주의 감로사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은 구조와 장식의 기교가 특히 좋은 것일 뿐이요, 하늘이 짓고 땅이 만든 자연적인 형세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이곳이 더 나을 것이다. 그곳의 누각(樓閣)과 지대(池臺)의 모양새는 모두 윤주의 감로사를 모방하였다.”라 하였다.

경미[瓊糜]  경미(瓊糜)는 경미(瓊爢)와 같으니, ‘옥가루’라는 뜻으로, 진귀한 식량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굴원의 이소경(離騷經)에 “경옥 가지를 꺾어 음식을 만들고 경옥 가루 빻아 식량을 삼으리라.[折瓊枝以爲羞兮 精瓊爢以爲粻]”라고 하였다.

경미[瓊糜]  옥가루로, 이를 먹으면 수명을 늘릴 수가 있다고 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경옥의 가지 꺾어 반찬 만들고, 경미를 빻아서 양식 만드네.[折瓊枝以爲羞兮 精瓊糜以爲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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