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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傾栽]~경재기재[卿材杞榟]~경재잠[敬齋箴]


경재[卿才]  경(卿)의 자질을 지닌 훌륭한 인재라는 의미이다. 초(楚)나라 영윤(令尹) 자목(子木)이 성자(聲子)에게 “진(晉)나라 대부(大夫)와 초나라 대부를 비교할 경우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성자가 “진나라의 경(卿)이 초나라의 대부보다 못하다. 초나라 대부는 훌륭한 이는 전부가 경의 재목이다. 이는 마치 기재(杞梓)와 피혁(皮革)이 초나라에서 보급되는 것과 같으니, 비록 초나라에 인재가 나오나 진나라에서 등용한다.”라고 대답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6年>

경재[傾栽]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하늘이 만물을 내는 데는 반드시 그 바탕을 인하여 후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심어져 있는 것을 길러 주고, 기울어진 것을 엎어 버린다.[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培之 傾者覆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경재[敬齋]  회암(晦菴)은 주희(朱熹)의 호이다. 그가 집 곁에 두 개의 협실(夾室)을 두고 여가가 날 때마다 그곳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경재(敬齋)이고, 나머지 하나는 의재(義齋)이다. 주역(周易)을 읽다가 “경(敬)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의(義)를 하여 외면을 바르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구절을 보고 학문을 하는 요체로 삼고자 해서 재실의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실제로 그가 지은 경재잠(敬齋箴)은 너무나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다. <心經 卷1>

경재기재[卿材杞榟]  훌륭한 선조 밑에 훌륭한 자손이 많이 나온다는 뜻이다. 초(楚)나라 영윤(令尹) 굴건(屈建)이 귀생(歸生)에게 묻기를 “진(晉)나라 대부(大夫)와 초나라 대부를 비교할 경우에는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라고 하니, 귀생이 대답하기를 “진나라의 경(卿)은 초나라 경보다 못하다. 초나라 대부는 훌륭한 재목이 매우 많아 전부가 경의 재목이다. 이는 마치 기재와 피혁(皮革)이 초나라에서 보급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5年>

경재잠[敬齋箴]  송나라 주희(朱熹)가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빠뜨린 뜻을 보충하여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경재잠(敬齋箴)에서는 맨 먼저 “의관(衣冠)을 바루고 시선을 장엄하게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처하여 상제를 대하며, 반드시 발의 움직임은 무거워야 하고 손의 움직임은 공손하여야 한다.[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足容必重 手容必恭]”라는 것을 말하였다. <心經 敬齋箴>

경재잠[敬齋箴]  주자가 장식(張栻)의 주일잠(主一箴)을 보충하기 위해 경(敬)의 성격과 공부에 대한 방법론을 사언시로 지은 것이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은 정(靜)의 경이고, 2장은 동(動)의 경이며, 3장은 표면의 경이고, 4장은 이면의 경이다. 5장은 무적(無適)을, 6장은 주일(主一)을 말하였다. 7장은 총론이고, 8장은 간단(間斷)이 있으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9장은 어긋나면 전도된다는 것이다. 10장은 경계하여 끝맺었다.

경재잠[敬齋箴]  주자(朱子: 주희朱熹)가 경(敬)과 관련된 옛날의 격언들을 모아 자신을 경계하는 뜻으로 지은 글인데, 중국의 정주학자들이 많이 애송하였으며, 특히 퇴계(退溪) 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서문에 “장경부의 주일잠을 읽고는 그가 남긴 뜻을 재정리하여 경재잠을 지은 다음에 서재의 벽에 써서 스스로 경계하였다.[讀張敬夫主一箴 掇其遺意 作敬齋箴 書齋壁 以自儆云]”라고 하였다. <悔庵集 卷85>

경재잠[敬齋箴]  송(宋)나라 주희(朱熹)가 장경부(張敬夫: 장식張栻)의 주일잠(主一箴)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여 지은 잠으로, 경재(敬齋)의 벽에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한 글이다. <晦庵集 卷85>

경재잠[敬齋箴]  주자(朱子)가 장경부(張敬夫:張栻)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유의(遺意)를 모아 지어서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이를 중요한 수행 방편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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