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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초[顈草]~경촌주[徑寸珠]~경총제사[經摠制使]


경초[顈草]  경(顈)은 모시와 비슷한 식물인데, 갈(葛)이 나지 않는 고장에서 그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삼년상이 겹쳤을 경우, 졸곡 후에 마질(麻絰)을 이미 경질(顈絰)로 바꾸었으면 연제와 상제를 모두 거행한다.[三年之喪 旣顈 練祥皆行]”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서 “경은 풀이름이다. 갈이 나지 않는 지방에서는 마질을 제거하고 나면 경질을 사용하였다.[顈草名 無葛之鄕 去麻則用顈]”라고 하였다. <禮記注疏 卷42 雜記下>

경초[勁草]  굳센 풀이라는 뜻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의가 변치 않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소우(蕭瑀)를 칭찬하면서 하사한 시에 “질풍 속에서 굳게 버티는 초목을 알 수 있고, 난리 속에서 충성스러운 신하를 알 수 있다.[疾風知勁草 板蕩識誠臣]”라는 표현이 나온다. <舊唐書 卷63 蕭瑀列傳>

경초[景初]  사경초(謝景初)로, 박학능문(博學能文)하고 시(詩)를 잘 지었으며, 왕안석과 절친한 사이였고, 4개주(個州)의 통판(通判)과 둔전랑(屯田郞)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경촌주[徑寸珠]  직경이 한 치나 되는 큰 구슬이라는 말이다. 전국 시대 양 혜왕(梁惠王)이 제 위왕(齊威王)과 평륙(平陸)에서 회합했을 적에 “우리나라가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름이 한 치 되는 구슬로 열 두 채의 수레를 앞뒤로 비출 수 있는 구슬이 열 개나 된다.[若寡人國小也 尙有徑寸之珠照車前後各十二乘者十枚]”라고 자랑하자, 위왕이 “내가 보배로 삼는 것은 왕과 다르다.[寡人之所以爲寶與王異]”라고 하고는, 단자(檀子)와 반자(肦子)와 검부(黔夫)와 종수(種首) 등 네 명의 신하를 차례로 거론하며 “장차 이들로서 천리를 비출 것이니, 어찌 다만 열두 채의 수레에 그치겠는가.[將以照千里 豈特十二乘哉]”라고 하니, 양 혜왕이 풀이 죽어서 떠나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46 田敬仲完世家>

경총제사[經摠制使]  송나라 휘종(徽宗) 때에 있었던 관명으로 7로(路)의 재부(財賦)와 경제(經制)를 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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