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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敬怠]~경통[敬通]~경통삼동[敬通三同]~경퇴[瓊頹]


경태[敬怠]  공경과 태타(怠惰)의 뜻으로, 순자(荀子) 의병(議兵)에 “공경하는 마음이 태타하는 마음을 이기면 길하고, 그 반대이면 몸을 망친다.[敬勝怠則吉 怠勝敬則滅]”는 말이 있다.

경태[景泰]  명(明)나라 경제(景帝)의 연호(1450~1457)이다.

경태제[景泰帝]  명 나라 7대 황제인 경제(景帝)로 선종(宣宗)의 차자(次子)이자 영종(英宗)의 아우이다. 영종이 토목(土木)의 변으로 납치되자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다. 경태(景泰)는 그의 연호이다. 영종이 돌아온 뒤 폐위되어 성왕(成王)으로 있다가 죽었는데 헌종(憲宗) 11년(1475)에 시호를 받고 황제의 호칭을 회복하였다. <明史 卷11>

경통[驚痛]  놀라고 슬퍼함. 몹시 놀라고 슬퍼서 마음이 아픔. 진양비통(震惊悲痛).

경통[敬通]  동관한기(東觀漢記)에 “풍연(馮衍)의 자는 경통인데, 후한 명제(後漢明帝)가 그의 재주가 실상보다 지나치다고 하여 억제하고 쓰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경통[敬通]  한(漢)나라 풍연(馮衍)이라는 사람의 자가 경통(敬通)이다. 그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도 세상에 출세를 못하고 집에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을 뿐이었다.

경통[敬通]  후한(後漢) 사람 풍연(馮衍)의 자이다. 그 아내가 사납고 질투가 심하여 잉첩(媵妾)을 거느릴 수 없었다. 자식들이 몸소 집안일을 하였고, 그는 노년에 결국 집에서 쫓겨나 곤궁하게 지냈으나 큰 뜻이 있어 빈천(貧賤)을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당대의 명성(明聖)한 세조에게 알아줌을 받지 못하였다. <後漢書 卷28 馮衍列傳>

경통삼동[敬通三同]  경통은 후한(後漢) 때의 고사 풍연(馮衍)의 자이고, 삼동(三同)은 양(梁) 나라 때의 고사 유준(劉峻)의 말에 “나는 풍경통(馮敬通)과 세 가지 같은 점이 있으니, 불우함이 한 가지이고, 강직함이 두 가지이며, 그와 내가 똑같이 투기하는 아내를 둔 것이 세 가지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南史 卷四十九>

경퇴[瓊頹]  눈에 덮인 나무가 쓰러진 것을 형용한 말이다. 진(晉)나라 혜강(嵇康)의 자태가 마치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선 것처럼 빼어나 그가 술에 취해서 넘어지면 옥으로 된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世說新語 容止>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서 “옥산이 절로 거꾸러지는 것이지 남이 민 게 아니라네.[玉山自倒非人推]” 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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