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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강[雞缸]~계강금수[桂江錦水]~계개[繼開]~계객[桂客]


계강[雞缸]  감구집(感舊集)은 왕사정(王士禎)이 편찬한 청나라 초의 시가 총서인데, 16권으로 되어있다. 주이준(朱竹坨)은 감구집서(感舊集序)에서 “술잔은 방초와 투계가 그 위에 그려져 있어서 ‘계강’이라 칭한다.[酒杯則畫芳草鬪雞其上 謂之雞缸]”라고 했다.

계강금수[桂江錦水]  계강(桂江)은 일명 상수(湘水)로, 계림(桂林)에서 발원하여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들며, 금수(錦水) 즉 민강(岷江)은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들어 결국 계강과 합류한다.

계강자[季康子]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대부.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68년에 죽은 춘추 때 노(魯)나라의 정경(正卿)이다. 희(姬) 성에 계손씨(季孫氏)에 이름은 비(肥)다. 노환공(魯桓公)으로부터 분가하여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했던 삼환씨(三桓氏) 중의 하나인 계손씨의 종주로 공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노나라의 정경을 지냈다. 노애공(魯哀公) 3년 기원전 492년 계환자(季桓子 ; 계손사季孫斯)가 죽을 때 자기의 뒤를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서출에게 잇도록 유언했으나 계강자가 사람을 보내 그의 서출 동생을 죽이고 스스로 환자의 후계자가 되어 노나라의 정경의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잡았다. 일찍이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와 번지(樊遲)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 군사를 물리친 바 있으며 후에 오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벌어진 애릉(艾陵)의 전투에 오나라 편으로 참전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크게 파하고 제나라의 상국 국서(國書)를 전사시켰다. 노애공 12년 기원전 483년 용전부(用田賦)라는 법령을 반포하여 노나라의 세제를 개혁했다. 노애공 27년 기원전 468년에 죽었다.

계개[繼開]  계왕성개래학(繼往聖開來學)의 준말로, 과거의 성현(聖賢)을 계승하고 후학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인데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繼往聖] 앞으로 올 후학을 열어 준다[開來學]’는 뜻이다.

계객[桂客]  과거 급제자를 뜻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극선(郤詵)이 천하제일의 대책문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에 “계수나무 숲 속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한 조각 옥돌이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자칭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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