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谿谷] 지명(地名). 사기(史記)에는 귀곡(鬼谷)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의 섬서성 경내에 있었다.
계골[雞骨] 수척한 상주의 모양을 가리킨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에 “왕융(王戎)과 화교(和嶠)는 동시에 큰 초상을 당하였다. 모두 효자로 알려졌는데, 왕융은 닭 뼈처럼 몰골이 앙상했고 화교는 예에 맞추어 곡을 하였다.[王戎和嶠同時遭大喪, 俱以孝稱, 王雞骨支牀, 和哭泣備禮.]”라고 하였다.
계공[谿工] 인명(人名). 성은 계(谿)이고 이름은 공(工)이며 위(魏)나라의 현인(賢人)이다[姓谿 名工 亦魏之賢人].
계과[桂科] 등과(登科)와 같은 말이다. 절계(折桂)라고도 한다. 진 무제(晉武帝) 때 극선(郤詵)이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壯元)을 하고는, 소감을 묻는 무제의 질문에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돌 한 조각이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답변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계과기명[雞窠寄命]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에 이수충(李守忠)이 승지(承旨)로 있다가 남방으로 사신이 되어 나갔는데, 경주(瓊州)의 경내를 지날 적에 양하거(楊遐擧)라는 81세의 노인을 만나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의 집에 가서 보니, 아버지인 양숙련(楊叔連)은 122세였고, 할아버지인 양송경(楊宋卿)은 195세였는데, 모두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차에 서까래 위에 있는 닭둥우리에서 한 어린아이가 머리를 내밀고 내려다보았는데, 양송경이 그를 가리키면서 “이분은 나의 선대 조상입니다.”라고 하였다. <說郛 卷39 洞微志>
계과양학발[雞窠養鶴髮] 송나라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에 이수충(李守忠)이 승지(承旨)로 있다가 남방으로 사신이 되어 나갔는데, 경주(瓊州)의 경내를 지날 적에 양하거(楊遐擧)란 노인이 길에서 맞이하여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의 집에 가서 보니, 양하거는 81세였고, 그의 아버지인 양숙련(楊叔連)은 122세였고, 그의 할아버지인 양송경(楊宋卿)은 195세였는데, 모두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과 더불어 말을 나누고 있던 차에 서까래 위에 있는 닭 둥지서 한 어린아이가 머리를 내밀고 내려다보았는데, 양송경이 그를 가리키면서 “우리 집안의 선대 조상이다.” 하였다. 소동파의 화도의고(和陶擬古)에서는 “닭 둥지 속에서 학발 기르며, 당나라 때 사람들과 노니는구나.[雞窠養鶴髮 及與唐人遊]”라고 하였다.
계과유로[雞窠遺老] 아무 일 없이 그저 목숨만 부지하는 늙은이란 뜻으로, 자신에 대한 겸사이다. 송(宋)나라 이수충(李守忠)이 서방(西方)으로 사신을 가다가 경주(瓊州) 어귀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이름은 양하거(楊遐擧)이고 나이는 81세라고 하였다. 이 노인이 이수충과 함께 집으로 가서 자기 가족을 소개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은 숙련(叔連)이고 122세이며, 할아버지의 이름은 송경(宋卿)이고 195세라고 하였다. 말하는 중에 보니 들보 위 닭둥우리[雞窠]에서 조그만 아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송경이 말하기를 “이 분은 나의 9대조로 말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나이도 모르는데, 초하루와 보름에 자손들이 모여 절을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說郛 卷39 洞微志>
계과지로[鷄窠之老] 계과(鷄窠)의 늙은이는, 닭둥우리에 있는 아기를 말한다. 송(宋) 나라 이수충(李守忠)이 서방(西方)으로 사신을 가다가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81세 된 양하거(楊遐擧)라 하면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 그의 아버지를 뵈니 이름은 숙련(叔連)이고 나이는 1백 22세이며, 할아버지의 이름은 송경(宋卿)이고 나이는 1백 95세였다. 말하다가 보니 들보 위에 닭둥우리가 있는데 그 안에 조그만 아기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송경은 “이 분은 나의 9대조인데 말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나이도 모른다.”고 하였다 한다. <洞微志>
계과포[繫瓜匏] 공자(孔子)의 말에 “내게 어찌 박[匏]이나 오이처럼 한 군데에 매어 있으란 말이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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