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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계릉[季陵]~계릉[啓陵]~계릉[桂陵]


계륵[鷄肋]  그리 취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렇다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사물(事物)을 비유한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을 치러갔다가 하룻밤은 군호(軍號)를 계륵(鷄肋)이라 하였다. 관속들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주부(主簿) 양수(楊脩)는 행장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묻기를 “어떻게 알았는가?”라고 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닭갈비는 버리기는 아깝고 먹기에는 소득이 없는 것인데[夫鷄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得], 그것으로 한중(漢中)을 비유하였으므로 왕이 돌아가려고 한 것을 알았다.”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1 魏書 武帝操>

계륵[雞肋]  닭의 갈비. 먹을 만한 것은 없고 버리기엔 아까운 음식물로, 큰 의미는 없으나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三國志 魏志 武帝紀 裴松之 注>

계륵[鷄肋]  계륵은 닭 갈비이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차마 버릴 수도 없는 것을 비유한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양수(楊脩)가 “대저 닭 갈비란 버리자면 아까운 생각이 들고, 먹자면 또한 먹을 것이 없다.[夫雞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得]”고 한 데서 온 말로, 그리 취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렇다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사물을 비유한다. <三國志 卷1 魏書 武帝操傳>

계륵[雞肋]  닭갈비. 삼국 시대 위(魏)나라 양수(楊脩)가 “대저 닭갈비란 버리자면 아까운 생각이 들고, 먹자면 또한 먹을 것이 없다.[夫雞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得]”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그리 취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렇다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사물을 비유한다. <華陽國志>

계륵[鷄肋]  닭갈비. 취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버릴 수도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을 치던 중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서 영을 내리기를 ‘계륵’이라 하니, 관속들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였는데, 주부(主簿)로 있던 양수(楊脩)는 문득 행장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에 사람들이 놀라서 양수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양수가 말하기를 “대체로 계륵이란 버리기도 아깝고 먹자니 맛이 없는 물건이다[夫鷄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得]. 이는 한중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1 魏書 武帝記注>

계릉[季陵]  계릉은 남송(南宋)·휘종(徽宗)·고종(高宗) 때의 문신으로서 온유한 표현을 구사하며 건명(建明)한 바가 많았는데, 일을 썩 잘 논하여 주소(奏疏)에 볼 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천거해 준 실력자 범종이(范宗伊)에 대해서는 “한번 잘못했다고 하여 종신토록 버리지 말고 나라를 위해 사람을 아끼는 뜻에서 조서를 내려 대간이 다시는 말하지 못하도록 하소서.” 하며 그의 전비(前非)를 극구 변호하는 상소를 올리는 등 처세에 능란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관도 이점을 그의 단점으로 비평하였다. <宋史 卷337>

계릉[啓陵]  면례(緬禮)하기 위하여 능을 파는 것을 말한다.

계릉[桂陵]  위(魏)나라 읍 이름.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하택현(菏澤縣) 동북쪽.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의하면 제 위왕(齊威王) 26년에 제장(齊將) 전기(田忌)가 손빈(孫臏)의 계모(計謀)를 써서 계릉(桂陵)에서 위군(魏軍)을 크게 패배시켰다.

계릉[桂陵]  일명 계양(桂陽)이라고도 하며 그 위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죽서기년 : 양혜왕(梁惠王) 17년 조에 ‘齊田期伐我東鄙, 戰于桂陽, 我師敗蒲, 亦曰桂陵. 濮渠又東逕蒲城’라고 하였다. 포성(蒲城)은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을 말한다. 사기정의 : 산동성 하택현(荷澤縣) 동북. 지금은 죽서기년의 설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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