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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桂榜]~계방[桂坊]~계방난제[季方難弟]~계방촌[契房村]


계반자지숭비[計班資之崇庳]  한유(韓愈)가 지은 진학해(進學解)의 끝 부분에 “만약 재물의 있고 없음을 헤아리고, 지위(地位)와 봉록(俸祿)이 높고 낮음이나 계산하면서[若夫商財賄之有亡 計班資之崇庳], 자기 역량에 걸맞은 자리를 잊은 채 상관의 잘못만 꼬집고 있다면, 이것은 이른바 말뚝으로 기둥을 삼지 않는다고 목공을 힐난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계방[桂榜]  계방은 대과(大科)에 급제한 사람들의 성명을 적은 방목(榜目)이다.

계방[契房]  공역(公役)의 면제 또는 다른 도움을 얻으려고 미리 관아의 아전(衙前)에게 돈이나 곡식을 주는 일인데, 이리하여 공역(公役)이 면제되는 마을을 계방촌(契房村)이라 하였다.

계방[桂坊]  동궁(東宮)이 있던 곳을 가리키는데, 조선 시대 때에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를 달리 이르던 말이었다. 세자익위사는 세자의 호위를 맡던 관청이다.

계방[季方]  동한(東漢) 진식(陳寔)의 아들 진기(陳紀)와 진심(陳諶)의 자(字)가 원방(元方)과 계방(季方)이었는데,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뜻으로 쓰이는 원방계방(元方季方)의 고사가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계방은 남의 훌륭한 아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世說新語 德行>

계방[季方]  상대방의 아우를 말함. 진식(陳寔)은 동한(東漢) 영천인(潁川人)이요, 자는 중궁(仲弓)인데 환제(桓帝) 때에 태구장(太丘長)이 되었다. 그의 아들 기(紀)의 자는 원방(元方)이고 심(諶)의 자는 계방인데 아울러 높은 이름이 드러나서 세상에서 삼군(三君)이라 불렀다. 세설(世說)에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이 영재(英才)가 있어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과 함께 각기 자기 아버지의 공덕을 논하며 서로 다투어 능히 결말을 내지 못하고 태구(太丘)에게 물으니, 태구가 말하기를 ‘원방은 형으로 삼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로 삼기 어렵다.[원방난위형(元方難爲兄) 계방난위제(季方難爲弟)]’라 하였다.”고 하였다.

계방[季方]  아우라는 뜻으로, 동한(東漢) 진식(陳寔)의 아들 진기(陳紀)와 진심(陳諶)의 자가 각기 원방(元方)과 계방(季方)이었다. 평소 진기는 덕행이 높기로 유명하였는데, 동생 진심 역시 덕행이 형 진기와 똑같아 매우 명망이 높았다. 후에 원방은 형, 계방은 아우로 통용되면서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뜻으로 쓰였다. <世說新語 上卷 德行 第1>

계방[季方]  훌륭한 아우를 뜻하는 말로, 후한(後漢) 때의 명사인 진심(陳諶)의 자가 계방이었는데 그의 덕행(德行)이 자기 형인 진기(陳紀) 원방(元方)과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명망이 매우 높았으므로 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말이 생겼다. 전하여 타인(他人)의 아우를 높여 일컫기도 한다. <後漢書 卷62 陳紀列傳>

계방관[桂坊官]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관원이다. 세자익위사는 세자의 호위를 맡던 관청이다.

계방난제[季方難弟]  계방(季方)은 동한(東漢) 진식(陳寔)의 둘째 아들 심(諶)의 자이다. 심이 그의 형 기(紀)와 함께 재주와 덕을 겸비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는데, 진식이 두 아들을 칭찬하기를 “원방(元方; 紀의 자)은 형으로 삼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로 삼기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 하여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世說新語 德行>

계방촌[契房村]  계방(契房)으로 정해진 마을. 공역(公役)이 면제되는 마을이다. 조선조 때 공역(公役)의 면제나 다른 도움을 얻으려고 미리 관아의 아전에게 돈이나 곡식을 주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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