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비[戒碑] 관리들을 경계시키기 위하여 돌에 명문(銘文)을 새겨 관서(官署) 앞에 세운 계석명(戒石銘)을 가리킨다. 구양수(歐陽脩)의 집고록(集古錄)에 “계비(戒碑)는 당 명황(唐明皇) 때 기원하였다.”고 하였다. 송 태종(宋太宗)이 각 지방에 계비(戒碑)를 세웠는데, 그 비문(碑文)에 “네 녹봉은 백성들의 고혈이다. 백성을 학대하기는 쉽지만,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爾俸爾祿, 民膏民脂, 下民易虐, 上天難欺.]”고 하였다. 주상현(朱象賢)의 문견우록(聞見偶錄)에 의하면, 후촉(後蜀) 맹창(孟昶)이 관리들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24구(句) 중에서 송 태종이 네 구만을 표출(表出)하였다 한다.
계비[啓悱] 비(悱)는 마음 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말로 표현하지 못함을 뜻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비하지 않으면 계발해 주지 않는다[不悱不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述而>
계비[季備] 석숭(石崇)의 자이다.
계비직고[階卑職高] 품계는 낮고 벼슬은 높음. 계고직비(階高職卑).
계빈[戒賓] 관례를 행할 때 예를 주관하는 빈(賓)이 되어 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또 친지들에게 관례에 참석해 주기를 널리 청하는 의미도 있다. <儀禮 士冠禮> <家禮 冠禮>
계빈[啓殯] 발인을 할 때에 관을 내오기 위하여 빈소(殯所)를 여는 것을 말한다.
계빈[罽賓]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 이름이다. <漢書 西域傳>
계빈찬[戒賓贊] 계(戒)는 고(告)의 뜻으로, 관례(冠禮)를 치를 집의 주인이 자신의 요우(僚友)인 사람을 빈(賓)으로 맞아 자기 집의 관례를 맡아보아 달라고 고하는 것을 말하고, 찬은 곧 빈의 집례(執禮)를 보좌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儀禮 士冠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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