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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어[係於]~계엄척[繼掩尺]~계여포[繫如匏]~계연[計然]


계어[係於]  ~에 달려 있다.

계엄[戒嚴]  황제가 출유(出遊)할 때에 길을 따라 삼엄하게 경호(警護)를 하는 것이다.

계엄척[繼掩尺]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장의와 중의는 소매의 끝을 잇는 베의 폭이 1자이고, 목을 두른 깃은 폭이 2치이고, 소맷부리는 1자 2치이고, 전체 테두리의 폭은 1치 반이다.[長中繼掩尺 袷二寸 袪尺二寸 緣廣寸半]”라고 하였다. 장의는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의 겉에, 중의는 조복이나 제복의 안에 입는 옷이다.

계여족계여수[啓予足啓予手]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를 손상하지 않고 죽게 됨을 다행스럽게 여긴 증자의 고사로,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증자가 병들어 죽게 되자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이불을 걷어 내 발을 보고 내 손을 보라. 시경(詩經)에 ‘깊은 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전전긍긍 조심한다.’라고 하였는데, 이제야 그러한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소자(小子)들아.”[曾子有疾 召門弟子 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계여포[繫如匏]  한 군데에 매어 있음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내가 어찌 조롱박처럼 매달려만 있겠느냐? 먹지 못하는 쓸모없는 조롱박은 되지 않을 것이다.”라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연[薊燕]  계주(薊州)와 연경(燕京)의 병칭이다. 계주는 북경 일대의 옛 지명으로, 산해관(山海關)의 서쪽에서부터 거용관(居庸關)의 동쪽에 이르기까지의 요충지이다.

계연[計然]  계연(計硏)이라고도 하는데,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경제가(經濟家)이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뒤에 복수할 생각을 품자, 범려(范蠡)와 함께 월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해야만 오나라에 복수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부강하게 할 계책을 진달하였다. 이에 구천이 그 계책을 따라 10년 만에 나라가 부강하게 되자, 계연은 군사들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전쟁터로 달려 나가는 것을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하게 해, 구천으로 하여금 마침내 오나라에 복수하게 하였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계연[計然]  범려(笵蠡)의 스승으로, 치부술(致富術)에 뛰어나서 월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범려는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멸한 후 ‘계연의 계책을 이제 집에 써 보리라’ 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오호(五湖)에 조각배를 띄우고 돌아다니다가 제(齊)나라에 들어가서 거부(巨富)가 되었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계연[計然]  춘추 시대 말기의 인물로, 박학다식하고 계산에 밝아 월(越)나라에 있을 때 범려(范蠡)가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곤욕을 치르고 난 뒤에 계연의 계책을 사용하여 10년간 실행하자 나라가 부강해졌으며, 범려는 회계의 수치를 씻은 뒤에 계연의 계책을 가정에 사용하여 거부(巨富)가 되었다고 한다. 계연의 계책은 물품이 비쌀 때 매도하고 쌀 때 매입하는 등 재정을 관리하는 계책을 말한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계연[計然]  춘추(春秋) 시대 월(越)나라의 경제가(經濟家)이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뒤에 복수할 생각을 품고는 범려(范蠡)와 계연을 등용하였다. 이에 계연이 월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시킬 계책을 진달하였는데, 구천이 그 계책을 써서 나라를 부강하게 해 마침내 오나라에 복수하였으며, 범려는 계연이 진달한 계책을 돈 버는 데 이용하여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계연[計然]  춘추시대 월(越) 나라 규구(葵丘) 사람으로 성은 신씨(辛氏), 자는 문자(文子)인데 범려(范蠡)의 스승이다. 월왕 구천(句踐)에게 재물을 축적하는 이재(理財)의 묘리를 가르쳐 줘 그대로 시행한 지 10년 만에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5패(五覇)의 하나가 되게 하였다. <史記 卷一百二十九 貨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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