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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자관악[季子觀樂]~계자괘검[季子掛劍]~계자구폐[季子裘敝]


계자관악[季子觀樂]  계자는 연릉(延陵)의 계자(季子)로 불렸던 춘추 시대 오(吳) 나라 계찰(季札)이다. 사신으로 상국(上國)을 역방하며 현사대부(賢士大夫)들과 교유하였는데, 노(魯) 나라에 가서 주(周) 나라의 음악을 듣고는 열국(列國)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정확히 알아맞히었다고 한다. <史記 卷31>

계자관주동상국[季子觀周動上國]  계자(季子)는 춘추 시대 오(吳) 나라의 계찰(季札)을 말한다. 상국을 역빙(歷聘)하여 현사대부(賢士大夫)들과 교유하였는데, 특히 예악(禮樂)에 밝아 노(魯)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주(周) 나라 음악을 직접 보고는 열국(列國)의 치란흥쇠(治亂興衰)를 알고 주 나라가 왕이 된 소이연을 설파해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

계자괘검[季子掛劍]  계자(季子)는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이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보검을 차고 서(徐)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나라 임금이 그의 보검을 탐내자, 마음속으로 공무를 마친 뒤 주겠다고 다짐하였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서나라 임금은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이에 계찰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나라 임금의 무덤가 나뭇가지에 보검을 걸어 놓고 떠났다. <史記 卷31 吳太白世家>

계자구[季子裘]  계자는 전국 시대 소진(蘇秦)의 자이다. 소진이 처음 연횡설(連橫說)을 가지고 수차 진왕(秦王)을 설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검은 갖옷은 다 해지고 노자인 황금 백 근(斤)도 다 떨어졌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戰國策 秦策>

계자구[季子裘]  청렴결백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오(吳)의 계찰(季札)이 나가 놀다가 길가에 금이 흘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오월(五月)에도 갖옷을 입고 다니는 피구공(被裘公)이라는 자를 보고 그 금을 주워가지라고 하자, 그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기를 “왜 자기 자신은 처신을 고상하게 하면서 남은 그리 얕잡아보는가. 오월에 갖옷 입고 나뭇짐 지고 다니는 자가 금은 주워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高士傳>

계자구폐[季子裘敝]  계자는 전국(戰國) 시대 변사(辯士) 소진(蘇秦)의 자(字)이다. 그는 진왕(秦王)을 설득하려고 진 나라에 갔으나 뜻을 얻지 못하고 돌아올 적에 검은 초피(貂皮) 갖옷이 모두 해졌다 한다. <史記 蘇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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