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전[季子田] 계자는 전국 시대 소진(蘇秦)의 자인데, 그가 연(燕), 조(趙),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육국(六國)의 왕들에게 합종설(合從說)로 유세(遊說)하여 종약(從約)을 체결하고 나서 육국의 상인(相印)을 한 몸에 차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만약 나에게 낙양(洛陽)의 부곽전(負郭田) 두 이랑만 있었다면 내가 어찌 오늘날 육국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戰國策 秦策1>
계자전[季子田] 전국시대 동주(東周) 낙양(洛陽) 사람으로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찼던 소진(蘇秦)이 “나에게 만약 낙양의 성곽 근처에 밭 두 뙈기만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여섯 나라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느냐.”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계자는 소진의 자이다. <史記 卷六十九 蘇秦傳>
계자지황[雞子之黃] 계란의 노른자위. 진(晉)나라 갈홍(葛洪)은 “하늘은 계란과 같고 땅은 계란의 노른자위와 같다.[天形如雞子 地如雞子之黃]”고 하였다.
계자초구폐[季子貂裘敝] 계자는 전국(戰國) 시대의 유세객(游說客) 소진(蘇秦)의 자이다. 소진이 맨 처음 연횡설(連橫說)을 가지고 진혜왕(秦惠王)을 설득하였는데, 열 번이나 상서(上書)를 했지만 진 혜왕이 끝내 그 말을 써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 소진은 객지에 나온 지 오래되어 검은 담비 갖옷이 다 해지고 여비인 황금 1백 근도 다 떨어졌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戰國策正解 卷三 秦策>
계자한[季子恨] 계자는 전국 시대 때 유세객(遊說客)인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소진이 진(秦) 나라에 가서 벼슬을 구하면서 진왕에게 글을 열 번 올렸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진 나라를 떠나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괄시하였다. 이에 분개하여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그 뒤에 다시 제(齊), 초(楚) 등 7국에 유세하여 합종(合從)하게 하고는 6국의 재상이 되자 진 나라 군사들이 15년 동안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오지 못하였다. <戰國策 秦策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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