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계찰관악[季札觀樂]~계찰괘검[季札掛劍]~계찰호대[季札縞帶]


계찰계검[季札繫劍]  계찰이 검을 걸어 놓는다. 신의를 중시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계자검(季子劍). 계찰괘검(季札挂劍).

계찰관악[季札觀樂]  계찰은 춘추 시대 오(吳) 나라 임금 수몽(壽夢)의 넷째 아들이다. 상국(上國) 즉 큰 나라를 역방(歷訪)하여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며, 노(魯) 나라에 가서 주(周) 나라 음악 연주를 보고 주 나라가 천자 노릇하게 된 까닭과 열국들의 치란·흥망을 알았다 한다. <左氏傳 襄公 十四年·三十一年, 史記 卷三十一>

계찰괘검[季札挂劍]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사신 가면서 서(徐)나라에 들렀는데 서군(徐君)이 계찰의 보검을 가지고 싶어했으나 입 밖에 꺼내지 못하였다. 계찰이 이를 눈치챘으나 사신 가는 길이어서 주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려고 하였다. 그 뒤에 돌아와 보니, 서군이 초(楚)나라에 가서 죽었으므로 칼을 풀어서 그의 아들에게 주었다. 시종이 만류하며 말하기를 “그 칼은 오(吳)나라의 보배입니다.”라고 하니, 계찰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내가 먹은 마음을 바꾸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칼이 아까워서 허위의 마음을 가지는 짓은 청렴한 사람이 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서군의 아들이 말하기를 “저의 선군(先君)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었으므로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계찰이 보검을 서군의 묘소 나무에 걸어 놓고 떠났다. 이에 서 땅의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연릉계자(延陵季子)여 옛날을 잊지 않으니, 천금(千金)의 칼을 풀어서 묘소에 걸어 놓았도다.” 하였다. <資治通鑑 卷7 外記>

계찰괘검[季札掛劍]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심허(心許). 오(吳)나라의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使臣) 가는 도중(途中)에 서국(徐國)을 지나는데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보고 갖고 싶어하므로 그는 마음속으로 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서국에 들르니 그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칼을 그 임금의 무덤 옆의 나무에 걸고 갔다 한다. <史記 吳太伯世家>

계찰지양[季札之讓]  오왕(吳王) 수몽(壽夢)에게 제번(諸樊), 여제(餘祭), 여매(餘昧), 계찰(季札) 등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계찰(季札)이 현능(賢能)하니 형제(兄弟)가 모두 그를 사랑하여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계찰이 듣지 않자, 제번(樊)이 왕위(王位)를 아들에게 전(傳)하지 말고 아우에게 전하여 자연스럽게 계찰에게 왕위가 가도록 하자고 제안하니, 모두 동의(同意)하였다. 그러므로 아우에게 위(位)를 전(傳)하여 여매(餘昧)에 이르렀다. 여매(餘昧)가 죽은 뒤에 계찰을 세우려 하자 계찰은 끝내 사양하고 임금이 되지 않았다. <公羊傳> <春秋左氏傳 襄公 二十九年> <史記> <吳世家>

계찰호대[季札縞帶]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 조에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정(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자산(子山)을 보고 옛날에 알던 사람처럼 친밀해져 호대를 선사하자, 자산이 답례로 모시옷을 선사하였다.”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친구 간에 사이가 두터운 것의 비유로 사용하였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
error: <b>불펌 금지!</b>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