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季布] 본디 항우(項羽)의 장수로 여러 번 유방(劉邦), 즉 한 고조(漢高祖)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유방이 항우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자, 계포를 잡기 위해 천금(千金)을 현상금으로 내걸고는 “만약 집에 숨기는 자가 있으면 삼족(三族)을 죄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계포를 숨겨 두고 있는 주씨(朱氏)의 말대로 등공(藤公)이 그의 어짊을 알고 한 고조에게 계포를 사면해 주라고 말하니, 고조가 죄를 사면하고 낭중(郞中)으로 삼았다.<史記 卷一百 季布傳>
계포[季布] 한(漢)나라의 문제(文帝)가 하동군수(河東郡守)로 있던 계포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으려고 도성으로 불렀으나, 어떤 이가 계포를 헐뜯자 그를 도로 돌아가게 하였다. <史記 卷100 季布列傳>
계포[繫匏] 매달린 뒤웅박이다. 공자가 “내가 어찌 뒤웅박과 같이 한 곳에 매달린 채 먹지 않을 수 있으리오.[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고 하였다. <論語 陽貨> 밖으로 다니지 않고 칩거함을 뜻한다.
계포곤[季布髡] 훌륭한 자라도 곤욕을 당할 때가 있음을 말한다. 한나라 때의 명장인 계포(季布)는 본디 항우(項羽)의 장수로, 여러 번 유방(劉邦), 즉 한 고조(漢高祖)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유방이 항우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자, 계포가 도망쳤는데, 유방이 계포를 잡기 위해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이에 계포는 머리를 깎고 숨어 있다가 뒤에 다시 한 고조의 부하가 되어 큰 공을 세웠다. <史記 卷100 季布列傳>
계포과[繫匏瓜] 공자가 일찍이 진(晉) 나라 중모재(中牟宰) 필힐(佛肹)의 부름을 받고 그곳을 가려고 할 적에, 자로(子路)가 불선한 사람에겐 왜 가시려 하느냐고 묻자, 공자가 “내가 어찌 박이더냐. 어찌 한 곳에 매달려 있어 음식도 먹지 못하겠느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계포란[鷄抱卵]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8 ‘서자융에게 답함[答徐子融]’에 보이는 내용이다. 원래 불가에서, 닭이 알을 품는 일을 그치지 않고 해야 병아리가 나올 수 있듯이 공부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성불(成佛)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계포무이락[季布無二諾] 한(漢) 나라 계포가 한 번 승락하면 반드시 지켰다는 고사로서 초(楚) 나라 속담에 “황금 1백 근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계포의 승락을 한 번 얻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한다. <史記 季布傳>
계포상[繫苞桑] 주역(周易)에 “나라가 망할까 염려하여 떨기로 된 뽕나무[苞桑]에 매라.”라 하였다. 뽕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튼튼하여 잘 뽑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포일락[季布一諾] 사람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음을 말한다. 조구(曹丘)가 계포(季布)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사람의 속어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번 승낙을 얻는 것만 못하다.[楚人諺曰 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고 하였으니, 족하는 어떻게 이러한 명성을 양초 지역에서 얻으셨소?”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100 季布列傳>
계포일락[季布一諾] 초한(楚漢) 시대에 계포(季布)가 처음 항우(項羽)의 부장(部將)이 되었다가 뒤에 한왕(漢王)에게 가서 하동 태수(河東太守)가 되었는데, 그는 본디 자기가 한번 승낙한 일이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서 신용을 잃지 않았으므로, 초인(楚人)들 사이에 일찍이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승낙을 얻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는 속어가 나오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계풍루[繫風樓] 홍주(洪州)의 객관 동쪽에 있는 누각 이름이다.
계피학발[鷄皮鶴髮] 사람이 늙어서 피부는 닭의 살갗처럼 되고 머리는 세어서 학의 털처럼 희어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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