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해[桂海] 강엄(江淹)의 ‘원태위(袁太尉) 숙(淑)의 종가시(從駕詩)’에 “문진(文軫)은 계해(桂海)를 육박하고, 성교(聲敎)는 빙천(氷天)에 빛나도다.[文軫薄桂海 聲敎爆氷天]”라고 하였다.
계해[桂海] 고대에 먼 남쪽의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엄(江淹)의 잡체시(雜體詩) 중 원숙(袁淑)의 종가(從駕)에 “강역은 남으로 계해를 육박하고, 성교는 북으로 빙천을 비추네.[文軫薄桂海 聲敎燭氷天]”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남해에 계수나무가 있기 때문에 계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文選 卷16>
계해[桂海] 남해(南海)의 별칭(別稱)이다. 남해에는 계수나무가 자라므로 이렇게 칭한다. 강엄(江淹)의 원태위숙종가(袁太尉淑從駕) 시에 “문진은 계해를 육박하고, 성교는 빙천에 빛나도다.[文軫薄桂海 聲敎燭氷天]”라고 하였는데, 문선(文選)의 주에 계해를 남해라고 풀이하고 빙천을 북극이라고 풀이하였다.
계해[計偕] 지방관이 해마다 조정(朝廷)에 보고문을 올리는데, 그것을 조정에 전하는 아전을 계리(計吏)라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 뛰어난 선비들을 조정에 추천하여 중앙에서 교육받게 하였는데 이 선비들을 인도하는 아전이 또한 계리였다. 그래서 이러한 추천 방식을 계해(計偕)라 하였다.
계해[計偕] 지방의 우수한 인재를 서울로 불러 올려 수학(受學)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유림열전 서(儒林列傳序)에 이르기를 “군국(郡國)의 각 고을에서 문학을 좋아하고, 윗사람을 공경히 섬기고, 정교(政敎)에 밝고, 향리(鄕里)의 풍속을 순하게 하고, 출입함에 있어서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다고 소문난 자가 있을 경우, 영(令), 상(相), 장(長), 승(丞)은 이들을 위로 이천석(二千石), 즉 고을 태수에게 소속시키고, 이천석은 쓸 만한 자인지를 신중히 살핀 다음, 계리(計吏)와 함께 태상(太常)으로 보내 제자(弟子)와 같이 수업(受業)하게 한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계(計)는 계리(計吏)이고, 해(偕)는 ‘함께’라는 뜻으로, 영(令)이 계리와 함께 태상으로 보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뒤에는 과거에 응시하는 자가 서울에서 치르는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계해공사[計偕貢士] 계해는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여 회계(會計)를 맡은 관원인 계리(計吏)와 함께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것을 말하고, 공사는 지방에서 조정으로 천거한 인재를 말한다.
계해반정[癸亥反正] 인조반정(仁祖反正)을 말한다. 인조반정은 광해군(光海君) 15년에 이서(李曙)·이귀(李貴)·김유(金瑬) 등 서인(西人) 일파(一派)가 인목대비(仁穆大妃)와 통모하여 광해군(光海君) 및 집권당(執權黨)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 즉, 인조(仁祖)를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다. 광해군) 15년은 바로 계해년(癸亥年)이었다.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 중국 영남(嶺南) 지방의 물산(物産)을 기록한 책이다. 송(宋) 나라 범성대(范成大)가 지었다.
계해지서[鷄駭之犀] 계해서(鷄駭犀)는 무소 뼈의 하나로 붉은 결이 있어 거기에 쌀을 담아 닭장에 넣어 두면 닭들이 쪼아 먹으려다가 놀라 도망간다고 한다. 해계서(駭鷄犀)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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