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고당부[高唐賦]~고당생[高堂生]~고당신몽[高唐神夢]


고당무협몽[高唐巫峽夢]  고당은 운몽택(雲夢澤)에 있었던 초(楚) 나라의 대관(臺觀).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주에 “적제(赤帝)의 출가하지 못하고 죽은 딸 요희(姚姬)를 무산(巫山) 남쪽에 장사지냈는데,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에 놀러 나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 무산에 있는 계집이라고 자칭하는 미녀를 만나 풍정을 나눴다.”라 하였다.

고당부[高唐賦]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송옥(宋玉)이 초왕(楚王)과 무산(巫山) 신녀(神女)의 환락을 묘사한 ‘고당부(高唐賦)’를 짓고,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낙수(洛水)의 아름다운 여신(女神)을 묘사한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는데, 주자대전(朱子大全) 76권 ‘초사후어목록서(楚辭侯語目錄序)’에서 주자가 이들 시의 작자에 대해 모두 ‘예법(禮法)의 죄인(罪人)’이라고 단안을 내린 기록이 보인다. 고당부와 낙신부는 모두 문선(文選) 19권에 실려 있다.

고당부[高唐賦]  초(楚)의 송옥(宋玉)이 쓴 고당부. 초 나라 양왕(襄王)이 운몽호(雲夢湖)에 나가 놀면서 고당관(高唐觀)을 구경하고 꿈에 무산(巫山)의 신녀(神女)를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다는 내용으로, 후세에 와서 고당(高唐)·무산(巫山)·양대(陽臺) 등을 남녀가 만나 즐기는 장소로, 운우(雲雨)를 남녀의 정사로 표현하게 된 것이 모두 이 고당부를 근거로 하여 시작되었다. <文選>

고당생[高堂生]  서한(西漢)의 초기 금문예학가(今文禮學家), 자는 백(伯)이고 노(魯)나라 사람이다. 고대(古代) 예제(禮制)를 전공하였다. 지금의 의례(儀禮) 17편은 곧 고당생에 의하여 전수된 것이다.

고당생[高堂生]  한(漢)나라 때 박사(博士)로서 예서(禮書) 17편을 전하였다.

고당신녀[高唐神女]  전국 시대 초(楚)나라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女人)이 와서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임금님이 여기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枕席)을 같이해 주소서.”라고 하므로, 과연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잤더니, 이튿날 아침에 그 여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구릉의 험준한 곳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아침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양대의 아래에 있습니다.[妾在巫山之陽 高丘之岨 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고당신몽[高唐神夢]  고당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누대(樓臺) 이름으로, 운몽택(雲夢澤) 속에 있는데, 초 나라 양왕(襄王)이 이곳에서 놀다가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선녀(仙女)를 만나 놀았다고 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