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릉[固陵] 유방이 항우를 추격하다 양하(陽夏) 남쪽에서 군대를 멈추고 한신과 팽월(彭越)을 기다려 함께 초나라를 치기로 하였는데, 고릉(固陵)에 이르러도 둘 다 오지 않았다. 항우의 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한 유방이 장량의 계책을 따라 둘을 제후왕으로 봉해 주자 그들이 군대를 이끌고 왔다. <史記 卷8 高祖本紀>
고릉[觚稜] 전당(殿堂)의 가장 높고 뾰족하게 나온 모서리로 궁궐을 뜻한다.
고릉[觚稜] 궁궐의 가장 높은 곳. 전각(殿閣) 지붕의 기와등[瓦脊]을 말한다. 반고(班固)의 서도부(西都賦)에 “고릉에 올라 금작에 깃든다.[上觚稜而棲金爵]”라 하였는데, 송나라 왕관국(王觀國)은 학림(學林)에서 “서도부에 말한 고릉은 기와등으로, 동철(銅鐵)로 봉작(鳳雀)을 만들어 장식한다.”라고 하였다.
고리[鼓里] 거성(莒城) 밖의 작은 지명(地名)이다.
고리[故吏] 지난날 수하(手下)에 있던 관리(官吏)를 이른다.
고리[故吏] 고리는 경험이 많은 노련한 관원이다. 번곤(藩閫)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같은 변방 군영의 장수이다. 후한서(後漢書) 권74상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에 “원씨(袁氏)는 사세(四世)에 걸쳐 은혜를 심었기 때문에 그 문하의 학생과 부하인 고리가 천하에 두루 깔렸다.” 하였다. 한서(漢書) 권7 소제기(昭帝紀)에 “고리를 선발하여 장액군(張掖郡)에 둔전(屯田)을 설치하려 했다.” 하였다.
고리[苦李] 고리는 쓴 오얏나무를 가리킨다. 쓴 오얏은 사람이 먹지 않으므로, 전하여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을 의미한다. 도변고리(道邊苦李)의 준말이다.
고리[藁里] 고빈(藁殯)한 마을과 빈장(殯葬)한 마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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