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高巒] 부평(富平) 서쪽 바다의 조그만 섬이다. 여지승람엔 고란(高鸞). 고려사 최해전(崔瀣傳)엔 고란(孤蘭)이라 되어 있다.
고만당파 예부걸류[考滿當罷 詣府乞留] 지방관이 고과(考課)의 기한이 차서 마땅히 관직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백성들이 부(府)에 나아가 유임시켜주기를 청원함을 이른다. 당(唐)나라 선종(宣宗)이 위수(渭水) 가로 사냥을 나갔는데, 부로(父老) 십수 명이 불사(佛祠)에 모여 있었다. 선종(宣宗)이 그 이유를 묻자, 부로(父老)들이 대답하기를 “저희들은 례천현(醴泉縣)의 백성입니다. 현령(縣令) 이군석(李君奭)이 특별히 훌륭한 정사를 베풀었으나 고과(考課)의 기한이 차서 마땅히 관직을 그만두어야 하므로 저희들이 부(府)에 나아가 유임시켜주기를 청원하였습니다[考滿當罷 詣府乞留]. 그러므로 부처님에게 기원하여 저희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회주자사(懷州刺史)가 결원이 생기자, 선종(宣宗)은 손수 임명장을 써서 이군석(李君奭)을 제수하였다.
고만수[苽蔓水] 5월의 물을 이른다. 5월에 오이 덩굴이 뻗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한다.
고말[膏秣] 고거말마(膏車秣馬)의 준말이다. 수레에 기름을 치고 말에 먹이를 먹인다는 뜻으로,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말로 쓰인다. 한유(韓愈)의 글에 “내 수레에 기름을 치고, 내 말에 먹이를 먹여 반곡에서 그대를 따라 일생을 마칠 때까지 소요하리라.[膏吾車兮秣吾馬, 從子于盤兮, 終吾生以徜徉.]”라고 하였다. <韓愈集 卷19 送李願歸盤谷序>
고말불해[袴襪不解] 고말(袴襪)은 수당시대에 신던 발등만 덮던 바닥이 없는 버선이다. <隋書 禮儀志> 고말을 벗지 않았다는 것은 나랏일을 걱정하며 늘 경건하고 조심스런 자세를 유지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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