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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맥표[高鳳麥漂]~고봉유맥[高鳳流麥]~고봉표맥[高鳳漂麥]


고봉[高峰]  고양(高揚)의 별칭이다.

고봉[孤蓬]  외로운 쑥대를 말한다. 쑥은 말라 뿌리가 끊어지면 바람 따라 날아다닌다 해서 비봉(飛蓬)으로도 불리는데, 옛 시가에서 먼 길 다니는 고독한 나그네를 비유하는 말로 항상 쓰였다.

고봉[高鳳]  동한(東漢)의 명유(名儒)이다. 이웃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그에게 와서 하소연하곤 하였는데, 그의 말을 듣고서는 모두들 심복하며 화해했다는 기록이 후한서(後漢書) 권83 고봉열전(高鳳列傳)에 나온다.

고봉[高鳳]  자는 문통(文通)으로 한 나라 섭현(葉縣) 사람이다. 고봉은 아내가 보리를 널고 고봉더러 닭을 보도록 하였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으나, 고봉은 글읽는 일에 도취되어 보리가 떠내려간 줄도 몰랐다.

고봉맥표[高鳳麥漂]  고봉(高鳳)은 후한 때 인물로, 어느 날 아내가 뜰에 보리를 말리면서 고봉에게 닭을 보게 하였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는데도 고봉은 장대를 잡고 경전을 외우느라 빗물에 보리가 떠내려가는 줄도 몰랐다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高鳳>

고봉묘[高峯妙]  고봉선사(高峯禪師)의 호로 이름은 원묘(原妙)이다. 송(宋) 가희(嘉熙) 무술년에 태어났지만 운암(雲巖) 흠(欽)을 북간(北磵)에서 참알하여 득법(得法)하였다. 원세조(元世祖) 지원(至元) 기묘에 천목서봉(天目西峯)에 올라 장공동(張公洞)에 들어가 제(題)하기를 사관(死觀)이라 하고 문밖을 나가지 않은 것이 15년이었으며, 학도들이 참정(參請)하여 한가한 날이 없었다. 고봉록(高峯錄)이 있어 세상에 성행하며 57세에 입적하였다.

고봉유맥[高鳳流麥]  고봉(高鳳)이 보리를 떠내려가게 하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다른 일을 잊는다. 동한(東漢) 시대 고봉(高鳳)은 젊은 날 독서를 워낙 좋아했다. 그의 집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었으나 그는 밤낮으로 책에 파묻혀 지냈다. 하루는 아내가 일하러 나가면서 고봉에게 뜰에 말리고 있는 보리를 좀 보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고봉은 닭 쫓는 작대기를 든 채 책을 읽느라 보리가 빗물에 다 떠내려가는 것도 몰랐다는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권113 일민전(逸民傳)> 고봉표맥(高鳳漂麥).

고봉준령[高峯峻嶺]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험준한 산마루를 이른다.

고봉표맥[高鳳漂麥]  고봉의 자(字)는 문통(文通), 한(漢) 나라 때 사람이다. 한 번은 아내가 밭에 가면서 보리를 마당에 널어놓고, 그에게 닭을 보라고 부탁하였는데, 마침 비가 와서 보리 멍석이 떠내려갔으나 그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장대만 들고 글을 읽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一百十三>

고봉피세[高鳳避世]  고봉은 후한(後漢) 때의 명유로서 항시 공부에만 열중하였으므로, 일찍이 자기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큰비에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공부만 했었다. 그 뒤에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또, 벼슬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형수(兄嫂)와 전지(田地)의 송사를 벌인 고사(故事)가 있다. 문통(文通)은 그의 자이다. <後漢書 卷七十三 逸民列傳 高鳳>

고봉현[高峰縣]  지금의 고양시(高陽市)를 가리킨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別集)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고양(高陽)에 “태조 갑술년(1394)에 처음으로 고봉현을 두고, 행주(幸州)와 부원(富原)·황조(荒調)를 이에 예속시켰다. 태종 계사년(1413)에 고양이라 개칭하고, 성종 신묘년(1471)에 군으로 승격시켰다.”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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