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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孤煙]~고열시[苦熱詩]~고염무[顧炎武]~고엽배[苦葉盃]


고연[孤煙]  외로운 연기. 저녁 무렵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 것을 지칭한 것이다. 왕유(王維)의 시 망천한거증배수재적(輞川閑居贈裴秀才迪)에 “나루터에 지는 해가 남아 있고 마을에는 외로운 연기가 오른다.[渡頭餘落日 墟里上孤煙]”고 하였고, 또 사지새상(使至塞上)에서도 “큰 사막에 외로이 연기만 곧게 솟고, 긴 강에 지는 해가 둥글구나.[大漠孤煙直 長河落日圓]”라고 하였다.

고열시[苦熱詩]  두보(杜甫)의 시 조추고열퇴안상잉(早秋苦熱堆案相仍)을 말한다. 그 시의 내용은 “칠월 초엿샛날 무더위가 극심하여 밥상을 대하고 잠시도 먹을 수 없었네. 항상 밤마다 나오는 전갈 때문에 시름겨운데 더구나 가을 온 뒤에도 파리까지 기승이네. 관복을 졸라매니 발광하여 크게 소리치고 싶은데 공문서는 어찌나 급하게 이어지는지 답답하네. 남쪽으로 푸른 솔이 골짜기에 걸친 것 바라보니 어찌하면 맨발로 두꺼운 얼음을 밟아 볼 수 있을까?[七月六日苦炎蒸, 對食暫餐還不能. 常愁夜來皆是蝎, 況乃秋後轉多蠅. 束帶發狂欲大叫, 簿書何急來相仍. 南望靑松架短壑, 安得赤脚踏層冰?]”이다.

고염[苦厭]  싫어하다. 귀찮다. 혐오하다.

고염무[顧炎武]  명(明)나라 말기, 청(淸)나라 초기의 사상가로서, 자는 영인(寧人)이고, 호는 정림(亭林)이다. 양명학(陽明學)이 공리공론을 일삼는 데 환멸을 느끼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實學)에 뜻을 두었다. 명나라가 망할 즈음 의용군에 참가하여 만주족에 저항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죽을 때까지 출사하지 않았다. 경학(經學), 사학(史學), 문학(文學) 각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대표작으로 일지록(日知錄)이 있다. 그의 실증적(實證的) 학풍은 청조의 고증학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명말 청초의 3대 유학자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고염무[顧炎武]  명말(明末) 곤산인(崑山人)으로 자는 영인(寧人), 호는 정림(亭林)인데 명말에 산중에 병거(屛居)하여 경사(經史)에 잠심(潛心)하였고 청(淸)에 들어와서는 벼슬하지 아니하고 사방에 주류하며 책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 그 뒤를 따랐다. 뒤에 화음(華陰)에서 졸하였다. 그 학은 주자(朱子)를 주로 삼았으며 고증(考證)에 능하여 저술이 무척 많았는데 일지록(日知錄) 30권은 더욱 몸을 바친 정예의 서(書)가 되었고 음학오서(音學五書)를 저술하였다.

고염무[顧炎武]  청나라 곤산(昆山) 사람. 자는 영인(寧人), 호는 정림(亭林). 강희(康熙) 연간에 박사에 천거되어 명사(明史)를 편찬했다. 박학다문하여 천문·지리·정치제도·법전·농(農)·병(兵) 등을 다 통하였다. 저서에는 일지록(日知錄)·좌전두해보정(左傳杜解補正)·구경오자(九經誤字)·석경고(石經考) 등 약 20종 수백 권이 있다. <明人小傳四·淸史稿 卷487>

고엽배[苦葉盃]  표주박으로 만든 잔을 말한다. 시경(詩經) 포유고엽(匏有苦葉)에 “박에는 마른 잎이 달리니 건너는 곳 옷 입은 채 건널 수 있도다.[匏有苦葉 濟有深涉]”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엽을 박의 대명사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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