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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臯羽]~고우[藁牛]~고우[膏雨]~고우성[高郵城]


고우[高郵]  고우(高郵)는 고을 이름인데, 회남자(淮南子) 남명(覽冥)에 “수후(隋侯)가 큰 뱀이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약을 붙여주었는데, 그 후 뱀이 강 속에서 큰 구슬을 물고 나와 은혜를 갚았다.”고 하였다.

고우[苦雨]  고우는 곧 오래오래 내려서 재해(災害)가 되는 비를 말한다.

고우[皐羽]  고우는 송말(宋末)의 절신(節臣) 사고(謝翶)의 자이다. 그는 원병(元兵)이 임안(臨安)까지 내려왔을 때, 승상 문천상(文天祥)이 개설한 연평(延平)의 부(府)에서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있다가, 원(元)에 구류되었던 문천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대통곡기(西臺慟哭記)를 짓고 산수(山水)를 즐기며 유유자적하였다. 소남(所南)은 역시 송말의 충신인 정사초(鄭思肖)의 자. 그는 원병이 남쪽으로 내려오자 오하(吳下)에 은거하면서 종신토록 장가도 들지 않았으며, 생전에 자기 위패(位牌)를 만들어 ‘대송불충불효정사초(大宋不忠不孝鄭思肖)’라고 써 놓았다 한다.

고우[臯羽]  고우는 중국 송(宋)나라 사고(謝翶)의 자이다. 호는 희발자(晞髮子)·송루자(宋累者), 포성(浦城) 사람이다. 경염(景炎) 원년(1276)에 추밀사(樞密使) 문천상(文天祥)이 근왕의 군사를 크게 일으켰을 때 사고가 군문에 나아가자 문천상은 그를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삼았다. 송나라가 망하고 문천상이 해를 당하자, 그는 서대통곡기(西臺慟哭記)를 짓고 항주(杭州)의 서산(西山)에 우거하다가 죽었다. 저서로는 희발집(晞髮集)이 있다. <宋元學案 卷56 龍川學案> 서대비가(西臺悲歌). 서대(西臺)는 바로 사고가 은거한 서산의 대이고, 비가(悲歌)는 바로 사고가 지은 서대통곡기(西臺慟哭記)를 말한다.

고우[藁牛]  입춘 날 토우(土牛) 대신 짚으로 만들어 쓰던 소를 말한다. 조선시대 함흥 지방의 풍속인데 짚으로 소를 만들고 멍에를 씌워, 관청 뜰에서 밭가는 시늉을 하였다.

고우[膏雨]  제때에 내리는 단비라는 뜻으로, 중국 황제의 은혜를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9년에 “소국이 대국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을 비유하자면, 온갖 곡식이 단비를 우러러 바라보는 것과 같다.[小國之仰大國也 如百穀之仰膏雨焉]”라는 말이 나온다.

고우[顧遇]  지우(知遇)와 같은 말이다. 지기의 인격(人格)이나 학식(學識)을 남이 알고서 잘 대우(待遇)함. 재능을 알아보고 중용함. 남이 자신의 인격이나 재능을 알고 잘 대우함을 이른다.

고우성[高郵城]  강소성(江蘇省) 고우 지역에 있는 성이다. 홍건적의 소굴이었는데, 1354년(공민왕3) 원나라의 장사성(張士誠)이 이곳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원나라의 요청으로 승상(丞相) 탈탈(脫脫)과 같이 최영(崔瑩), 유탁(柳濯), 인당(印璫), 구영검(具榮儉) 등이 원병을 이끌고 출전하여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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