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高允] 북위(北魏)의 고윤은 어릴 때부터 경사와 천문·술수에 두루 통달하였다. 문성제(文成帝) 때 양성후(梁城侯)로 봉해졌는데 황제가 그를 매우 신망하여 감히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전후 다섯 임금을 섬겼고 50여 년 동안 벼슬하였는데 강직한 신하로 소문이 났다. <魏書 卷48 高允傳>
고윤[高允]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北魏)의 대신으로, 자는 백공(伯恭)이며 고호(高湖)의 조카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경사(經史)와 천문, 술수(術數)에 밝았다. 문성제(文成帝)가 즉위하여 중서령(中書令)으로 임명하고 늘 궁궐로 불러 종일토록 자문하였는데 영공(令公)이라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효문제(孝文帝)가 함양공(咸陽公)이란 작위를 내렸다.
고윤[高允] 후위(後魏) 때 사람으로 자는 백공(伯恭)이다. 경사(經史)와 천문(天文)·술수(術數)에 두루 통하고 벼슬은 중서박사(中書博士)·저작랑(著作郞)·산기상시(散騎常侍) 등을 역임하였으며, 저서에는 노전석(老傳釋)·공양석(公羊釋)·모시습유(毛詩拾遺) 등이 있다. <魏書 卷48>
고음[古音] 고음은 고악(古樂)을 말한다. 아악(雅樂)으로서, 고대 제왕의 제사나 조회 때 연주한 음악이다. 선왕(先王)의 바른 음악[正樂]이라 하였다.
고음[侤音] 관(官)에 대하여 맹세와 증언 등의 다짐을 하는 문서의 명칭이다. 대체로 소송 결과 패소한 사람이 관의 판결대로 이행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고음태수[苦吟太瘦] 이백(李白)의 희증두보(戱贈杜甫) 시에 “묻노니 한번 작별한 이래 파리해진 모습은, 모두 종전부터 괴로이 시를 읊은 때문일세.[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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